강준수 목사 (안디옥교회 담임)
1930년대 초 미국은 심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경제공황에 빠져들면서 은행과 공장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많은 실업자들이 떼를 지어 할 일 없이 어슬렁거렸습니다. 그 때 어느 한 극장에 ‘입장무료’라고 쓰여 있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할 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수많은 실업자들이 몰려 들어가서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게 영화구경을 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윽고 퇴장시간이 되어서 군중들이 슬슬 퇴장을 하는데 출구 양쪽에 어깨가 딱 벌어진 장정들이 서서 돈을 내고 가라고 합니다. 놀란 군중들은 입장료가 무료 아니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문지가가 “예, 맞습니다. 그래서 입장료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퇴장료는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출생이라는 입구를 통해서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출구를 통해서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보면 이 세상도 “입장무료”인 극장인 셈입니다. 내 수고 내 노력은 하나도 지불하지 않은 채 출생이라는 입구를 통해 이 세상에 공짜로 들어와서 한평생을 재미있게 세상구경을 다 하고 다 각각 인생을 보냅니다. 이윽고 세상을 떠날 시간이 돼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면 누구나 세상을 퇴장하는 인생 퇴장료를 요구받게 됩니다. 공짜가 아닙니다.“퇴장료”라는 말은 어색하지만 살아온 인생에 대한 삯을 내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지은 죄의 삯을 지불해야 하고 길던 짧던 일생동안 즐긴 이 생명에 대한 삯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최후심판과 같은 결산이 그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은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신앙도 겪어보아야 압니다. 기도하는 것 보면 그 신앙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또 헌금하는 것 보면 그 신앙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눈물과 희생이 필요한 때, 그때 보면 그 신앙의 진위와 그 깊이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거기까지 가보지 않으면 아직은 그 신앙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순간입니다. 그 신앙의 진실성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삯을 묻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봐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자신 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를 보면 그 신앙의 진실성과 신앙의 깊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다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성도들조차 마음으로는 천국을 사모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시간이 오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죽으면 다 끝이지”하는 인생에 대한 탄식이 허탈감과 함께 우리 본능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영적인 센스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죽으면 모든 것의 끝입니까?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피곤한 인생의 끝을 죽음으로 맺어놓으면 새로운 영광의 시작이 이어집니다. 졸업이 끝이라면 뭐가 그렇게 좋겠습니까? 그 다음에 오는 Commencement 새로운 시작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살든지 죽든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는 것과 죽는 것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첫째는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이 교회만 오가면서 기독교라는 종교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서면 여지없이 밀려오는 공허함과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는 말씀을 굳게 믿고 중심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면, 그는 죽음 앞에 설 때 도리어 천국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야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 천국에 우리를 들여보내주어야 한다고 하나님께 내 세울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사명입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해드리는 것이 인생의 사명임을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서 얼마를 남겼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기는 유산의 많고 적음과 인생의 출구 죽음에서 최후결산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인 이명박 장로께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인 김영삼 장로께서도 50억이 넘는 자기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 역사에도 처음 있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한 국회의원도 자기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고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은 아주 멋있는 말을 함께 남겼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자인 채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니, 내가 이 힘든 세상을 굳이 왜 더 살아야하는지 내 인생의 존재이유를 자신에게 묻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 심장이 내 가슴을 두드리며 가르쳐주는 존재이유를 알아듣고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야 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처음엔 부모에게서 육체적으로 태어나는 출생이고 둘째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영적 출생이고 셋째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를 깨닫는 사명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한 생명을 어머니 모태에서 조성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셔서 순간순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는 그 영적인 각성이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목표를 결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란 사명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의식이란 생명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이고 자신을 넘어 몸소 실천해야 할 내 인생의 작품에 대한 최고의 집념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만일 오늘 이 세상을 퇴장한다면 나는 과연 하나님께 무엇을 남겨드리게 되는 것일까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만일 너에게 준 생명 자유 믿음 은혜 그 많은 축복으로 너는 무엇을 했는가 물어보실 때 “저도 이런 신앙의 열매를 헌신의 작품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면 인생의 충분한 퇴장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죽음이 닥칠 때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도 죽어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좋은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