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천5백만명의 오리시족이 인도에 거주하지만 3만여 명이 이웃나라 방글라데시에서도 살고 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에서 매년 홍수와 태풍의 피해가 심한 더운 시골지방에서 산다. 이들은 영양부족과 인구과밀의 피해자들이다. 경제는 농업 의존적이나 토지는 거의 개발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오시리족은 인도-아리안계 언어인 오리야(Oriya)어를 사용한다.
방글라데시가 출현한 것은 인도에서 무슬림과 힌두교인들과의 분쟁 중에서 나타난 근래의 일이다. 1930년대에 늘어나는 무슬림들은 힌두교인이 지배적인 인도에서 분리되기를 희망했다. 그 결과는 파키스탄이었다. 무슬림이 다수인 방글라데시 또한 인도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쌈 지역(a district of Assam)을 연합시켜서 동파키스탄이 됐다. 그러나 이 나라는 서파키스탄에 의해 20여년동안 심하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1971년에 내전이 일어나 독립국 방글라데시가 탄생됐다.
삶의 모습
방글라데시는 매년 홍수로 인해 매우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는 삼각주 지역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오리시족들은 농부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대다수 중부 및 동부 인도에서와 같이 쌀은 방글라데시의 주요 작물이다. 밀, 보리, 옥수수가 식용으로 재배되고 황마(jute)가 수출을 위해 재배된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농업에 매우 의존적이어서 일부 아이들은 농번기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다.
남자들은 씨뿌리기, 쟁기질, 사냥, 낚시 등을 하며 여자들은 밭의 잡초뽑기, 집안 허드렛일, 아이돌보기 등을 한다. 남자들은 물건을 나를 때 장대를 어깨에 걸쳐 균형을 맞추고 여자들은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른다.
오리시족의 전통적인 마을은 비옥한 계곡 강가 혹은 열대 평원지역에 위치한 대나무 오두막집들로 구성돼있다. 대부분 집 뒤뜰에 작은 채소밭과 과일나무들이 있다. 홍수가 범람하는 해안지역에서는 집들이 논(rice field)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로써 농부들은 연중 그 곡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오리시족의 문화적인 역사는 예술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독특한 민속화와 조각, 건축물로 유명하다. 무용드라마(dance drama)와 민속오페라(folk opera)를 포함한 무용과 음악 또한 그들의 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다.
신앙
오리시족은 거의 대부분 힌두교인이다. 그들의 신들, 죽음의 영, 마을의 신들로부터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구니아스(Gunias, 마법사)는 마을에서 마술, 요술을 부린다. 새해맞이축제, 비옥한 땅의 축제(the Fertility of the Earth festival) 대규모의 종교의식, 축제가 전 지역에 걸쳐 열린다.
그들은 질병이 악령이나 마술사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내려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12궁(the zodiac)에 있는 행성과 별들이 개인의 물리적, 정신적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믿으며 문둥병은 큰 죄에 대한 벌이라고 믿는다. 민속약초들(herbal folk medicine)과 푸닥거리(exorcism) 그리고 마법사들이 질병을 치유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리시족은 죽음이 단순히 하나의 삶에서 다름의 삶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순환이 그 사람의 절대 영(absolute soul)과 그 영혼이 합쳐질 때까지 지속된다고 믿는다. 야마(Yama)라고 하는 정의의 신이 영혼을 천국 혹은 지옥으로 보낸다고 여긴다.
필요로 하는 것들
방글라데시의 오리시족을 위해서는 현재 단 하나의 선교단체만이 일하고 있다. 성경은 그들의 언어로 번역됐고 예수영화도 있다. 그러나 힌두교에 만족하고 이 종교에 헌신하는 것이 이들의 삶에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리시족에게는 훈련된 의료 사역자들, 적절한 보건시설, 충분한 영양공급과 더 많은 교육의 기회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소중한 사람들이 예수가 그들의 질병을 고치고 바른길로 인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기도가 바로 이들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메시지를 듣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