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같은 연단의 축복

박성규 목사

주님세운교회

 

‘일하는 제자들’이라는 신앙지에 이런 글이 실렸었습니다. 회사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회사발전을 위해 회장님을 비롯한 전 직원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을 어렵게 들어온 집사님 한 분이 고민하다가 사표 낼 각오를 하고 당직실로 가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으로 그 집사님의 이름이 불려져도 그는 기도만 했습니다. 고사가 끝난 후 회장에게 불려갔을 때, 그 집사님은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며 사표를 써서 갔지만 회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교회 장로라는 사람들도 다 돼지머리 앞에서 절하던데 원 부장은 왜 절하지 않고 당직실에서 기도하고 있었지? 난 원 부장처럼 확실한 사람이 좋아”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주 중요한 공장에 사장으로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도금과 순금은 500도 되는 불 속에서 정체가 드러나듯이,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는 고난과 시련 앞에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욥기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 불에서 금을 단련하시듯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을 불로 연단하십니다. 그리하여 유약한 병아리 크리스천이 아니라 강인한 독수리 크리스천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불같은 시련이 올 때, 그 십자가를 피하려고만 하지 마시고 나를 강하게 연단하여 강인한 신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고 감사하십시오.

아프리카에 간 미국 선교사가 어느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강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데 주민들이 모두 머리에 돌을 이고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이 강 한 가운데 가면 물살이 어찌나 센지 돌을 지고 가지 아니하면 떠내려가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급류가 있습니다. 이 인생의 급류에서 우리를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큰 돌 같은 고통의 십자가를 우리 성도들 어깨에 메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인해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유대인 랍비가 자신의 두 제자를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한 장소에 이르러 랍비는 제자들에게 각각 십자가 하나씩을 건네주면서, 자신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먼저 가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 만에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당도하였습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랍비의 발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내주시다니요! 제가 이제야 온 것은 더 무거운 십자가를 졌기 때문이라구요.” 제자의 불평을 듣고 있던 랍비는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그러자, “설마 무게가 똑같았는데 저 친구는 아주 쉽게 지고 갔고, 저만 쩔쩔 매었다는 것입니까?” 랍비가 그에게 타이르셨습니다. “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이에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하고 원망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감사하며 기쁨으로 지고 갔기 때문에 그 감사가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야.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지고갈 수 있었던 거지.”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천성을 향해 올라가는데,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하면 할수록 십자가는 더욱 무거워지고 감사함으로 지고가면 그 십자가의 무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주어진 고난의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지난 1년2개월이 넘는 동안 코로나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십자가를 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짐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영적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교회는 “나라 살리기 일천번제 새벽기도회”를 지금 270일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통해 예배와 기도가 더욱 뜨거워지고 성도들의 가정예배가 살아났습니다.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도 하나님께는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1:12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때때로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고난과 시련에서 피할 길을 주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게 하실까요? 영광 주시기 위함입니다. 불 섞인 유리바다를 통과한 성도, 연단을 거치고 성숙한 성도, 감사함으로 십자가를 지는 성도가 되어 주님 앞에서 영광스럽게 세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들이 왜 그렇게 정글과 오지에서 고생하면서도 견딜 수 있을까요? 순교자들이 왜 순교당하는 자리에서 찬송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이 주의 일하다가 억울한 일 당해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오히려 찬송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고난이 내게 주어진 특권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8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성도에게 주의 고난에 동참케 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교회에 남다른 고통과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12제자 가룟 유다 빼고는 모두 순교자였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산 순교자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십자가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주님의 피 값으로 주고 사신 교회를 위해 고난 받을 수 있는 특권 주신 것을 인해, 이 영광에 참여하게 됨을 인해 감사드리는 성도되시길 바랍니다. 

songkpak@hotmail.com

06.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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