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친구의 선교관이 있는 곳은 이태리 북서쪽에 있는 피에몬테(Piemonte)지역이다. 그곳은 구릉으로 형성된 지역으로 기원전 100년 전부터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곳이다. 명동 같은 곳은 평당 몇 억이라는데 이곳은 같은 땅인 데도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다. 굳이 비교한다면 시이저와 로마 병사의 차이 정도?
그 대지는 많은 나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라는 곳이다. 그런데 메인(main) 건물 바로 앞에 아름드리 향나무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무거운 가지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삶을 포기할 것 같다. 그래서 우선 무겁게 자란 가지들을 쳐내기로 했다.
친구가 이미 가지들을 일부 쳐낸 상황이었다. 그래서 객기(해병대에서 익힌)가 발동하여 내가 나머지를 자르겠다고 나섰다. 대신 사다리를 꽉 잡으라고 당부했고. 마침 높은 가지를 자르기 위해 4-5m길이의 대 끝에 전기톱이 달려있어 그것을 자르려는 가지에 올려놓고 손잡이에 달려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톱은 행동을 취하게 된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지들을 쳐낼 때마다 향나무는 아름다운 향취로 주변을 물들인다. 향취를 맡으면서 문득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6.25사변 때 돌아가심으로 삼촌이 기일이 찾아올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시곤 했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종지에 화롯불을 한줌 가져와 그곳에 마른 향나무 토막을 가늘게 깎아 종지 불에 넣으면 신비스런 연기와 함께 향내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향취는 절간에서 나는 향취 같았다.
5미터 높이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톱이 달린 장대(?)를 높이 들어 자르려는 가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면 기다렸다는 듯 잘라지는 톱밥이 인정사정없이 얼굴로 돌진해왔다. 마치 쏟아지는 함박눈처럼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안경을 썼기 망정이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기에 계속 진행했더니 갑자기 따딱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가지가 사다리 꼭대기로 불안하게 서 있는 나에게 삽시간에 덮쳐왔다. 예상외로 무거운 가지의 무게로 인해 사다리는 기우뚱하며 쓰러지려고 했다. 평안하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생면부지의 로마 놈이 찾아와 자신의 팔을 자르니 분노가 일었나 보다. 마침 아래서 친구가 사다리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무성한 가지가 내 온몸을 덮쳐버렸기 때문이다. 향내로 가득한 나무가 냄새만 풍기는 나를 덮쳤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가득 쌓이기만 한 나의 더러운 냄새를 없애고 대신 향취로 충만하게 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일어난다. 샤워를 할 때 등이 따끔거려 거울에 비춰보니 어깨로부터 아래까지 벌건 상채기가 나 있었다.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다고 했는데 나에게 이런 식의 흔적을 통해 향취를 표출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싶다.
그리스도의 향취로 충만한 노년이 된다면 그 얼마나 바람직한 일일까 싶다. 비록 등에 할 킨 생채기가 있고 그곳에 연고를 발라야 한다 해도....
어제 이태리 코로나 현황-감염 552명, 사망 3명.
locielo88@naver.com
08.2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