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이 되라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성경에는 참 놀라운 말씀들이 많다. 기적(奇蹟)과 이사(異事)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고 그 대부분은 상식이나 경험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들이다. 그런 내용들은 거의 하나님의 섭리와 피조물들에 대한 교훈이 담겨있다. 왕하 4:1-7을 살펴보자. 선지자의 여러 제자 중 하나가 죽었는데 그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남편이 빚을 남기고 죽었는데 그 빚쟁이가 두 아들을 빚 대신에 데려가 종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여인의 집에 있는 것은 오직 기름 한 병뿐이라고 했다. 이를 들은 엘리사가 여인에게 이웃들에게 가서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라고 하니 그가 선지자의 말대로 하였더니 빌려온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찼고 선지자는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다.

가난한 여인의 집에 남은 기름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이 이웃에게 빌려온 빈 그릇들은 꽤나 많았을 듯하다. 빚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빚을 갚고도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기름을 담았을 분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적은 분량의 기름이 많은 그릇에 가득가득 채워질 만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의 이해부득(理解不得)인 말에 여인이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과부에게 집에 있는 그릇들을 빌려준 이웃들! 그들의 마음가짐이다.

당시의 그릇은 거의 질그릇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잘못 다뤄도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 질그릇이다. 그 질그릇들의 가치가 얼마였는지는 모르나 아주 작은 질그릇이 깨졌다 해도 그 여인의 형편으로는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릇들을 빌려준 이웃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 여인의 이웃들도 다 가난했을 수도 있다. 빚을 갚지 못해 아들들을 빼앗길 처지의 여인을 돕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떼일지도 모를 돈을 기꺼이 빌려줄 만큼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인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빈 그릇들을 빌려오는 데는 성공했다. 여인이 빌려온 그릇들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이 채워지는 기적을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보여주셨고 그 양은 빚을 갚고도 남아 생활을 할 수 있을 많은 분량이었으니 말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빈 그릇이다. 그 빈 그릇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은 현실이 되었고 그 결과로 인해 그 여인과 두 아들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그 무엇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어떤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빚쟁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사 그 빚을 탕감토록 하실 수도 있었고 누군가가 그 여인을 불쌍히 여겨 빚을 대신 갚아주도록 하실 수도 있으시지만, 하나님은 오직 그 자신 한 분만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매체를 사용하셔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곤궁에서 건지시기 위해 사용한 매체가 바로 빈 그릇이었다. 비어 있는 그릇이었기 때문에 기름이 채워질 수 있었고 그 기름을 팔아 위기를 넘기며 더하여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인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해 기꺼이 빈 그릇이 되어야만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곳이다. 독생자를 주신 것은 세상이 멸망을 받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 대해 택하심을 받은 자는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담을 그릇!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화평을 담을 그릇!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빈 그릇이 되어야 한다.

빈 그릇에 담겨질 것은 사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 4:11).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고 권면한다. 바로 빈 그릇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다.

빈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는 오직 그릇을 만든 이만 안다. 금은보화로 만들었어도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 되고 반찬을 담으면 반찬 그릇이 되고 오물을 담으면 오물 그릇이 된다. 흙으로 만들었어도 거기에 복음을 담으면 기쁜 그릇이 되고 사랑을 담으면 사랑 그릇이 되는 것이다. 여인의 이웃들이 빌려준 빈 그릇들이 그 여인을 구원할 그릇이 되었듯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세상을 담을 빈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하나님의 뜻을 담는 빈 그릇이 되기를 더욱 힘쓰자.     

hanmackim@hanmail.net    

06.2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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