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어렸을 적에 불렀던 노래 가운데 “오뚝이”라는 노래가 있다. “책상 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 검은 눈은 성내어 뒤룩거리고/ 배는 불룩 내민 꼴 우습구나야---아래로 떨어져서도/ 안 아픈 체하는 꼴 우습구나야” 무심코 오뚝이를 우습게 여기면서 불렀던 노래였다. 과연 오뚝이는 그런 우스꽝스런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오뚝이를 잠시 인격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는 크게 존경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는 칠전팔기(七顚八起)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백 번 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자기를 넘어뜨린 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는 상처를 받았다며 주저앉아 울지 않는다.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오히려 웃으며 오뚝이는 곧 다시 일어난다. 그 웃음은 그를 향해 “우습구나야”라고 놀리던 자들을 향해 웃는 것이다.
“Resilience(복원력, 회복력)”이라는 단어가 있다. 여러 이유로 휘어지고 구부러지긴 하지만 마침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말한다.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그냥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구부러진 고통의 시간에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배워서 돌아오는 것이다. 전적으로 새로워져서 돌아오는 것을 “resilience”이라고 한다. 어떤 질병이나 고통에서 일어서는 분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깨달음을 가지고 회복하는 것을 본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Agape Wave”라는 작은 부서가 있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친구들이 담당 목사님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매 주일 모여서 예배드리고 특별활동도 한다. 가끔 야외활동도 하는데 그 주중에 눈도 내렸고 당일은 몹시 추웠던 지난 토요일, 맨해튼의 박물관을 다녀왔다. 다음 날 주일에 담당 목사님께 잘 다녀오셨냐고 물었다. Van으로 전철역까지 갔고, 맨해튼에 내려서는 박물관까지 그리고 박물관 안에서도 많이 걸었다고 한다. 훈련 차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기도 하였는데 친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했다. 동행했던 교사들의 적절한 역할 가운데 모두 교회로 가정으로 다시 잘 돌아왔다고 하시면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Resilience”은 단순한 원상태로의 복원이 아니다. 넘어지기 전에는 알지도 누리지 못했던 풍성함을 가지고의 복원이며 회복이다.
인생길에 넘어짐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거나 어떤 넘어짐에서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이 자그마한 장난감 오뚝이만도 못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의 넘어짐에는 이런 손길이 함께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3-24) 복싱에는 “다운”도 있고 “KO”도 있다. 다운은 일어나면 다시 기회가 있으나 KO는 완전 끝이다. 자기 선수가 다운당할 때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항복과 포기의 흰 수건을 던지는 코치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넘어짐에 주님은 애처롭다며 흰 수건을 던지지 않으신다. 다가와 손 내미신다. 붙들어 일으켜 주신다. 그리고 이기게 하신다. 우리에게 가끔 다운은 있어도 결코 KO는 없다. 주님 때문에 다운에서 일어나 끝내 이긴다.
지금, 넘어지셨는가. 오뚝이같이 일어나야 한다. Resilience, 풍성한 복원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KO패가 아니라 역전승으로 끝나는 존재임을 온 세상으로 알게 해야 한다.
01.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