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자기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세요.” 며칠 전 신학교 종강예배 설교 중에 학생들에게 던진 토론 주제였다. 둘씩 혹은 셋씩 짝을 지어 자기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냥 두었더라면 밤을 새워 이야기 했으리라. 깊은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눈시울이 젖기도 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후에 들어보니 아버지 이야기하라는데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 마음이 덜컥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아버지만큼 다양한 관점을 갖는 주제가 있을까?
수년 전 고(故) 황수관 박사의 강연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그는 어느 여론조사 내용을 밝히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1위가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름다운 이름 70위에도 들지 못했다는 결과도 덧붙였다. 그래서인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지었다는 “아빠는 왜?”라는 시(詩)는 이렇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 해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짧은 시를 읽으면서 입가에 웃음은 있었으나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잊혀진 존재가 아닌가 하여 마음이 씁쓸했다.
하지만 조창인 씨의 소설 “가시고기”는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시고기 수컷은 새끼를 돌보느라 밤을 지새우고 새끼를 사랑하다 죽어가는 고기라 한다. 그 소설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버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한 쪽 눈까지 팔아 병원비를 대기까지도 사랑했던 아들을 이혼한 부인에게 넘겨주던 날, 그 아버지는 울음을 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잘 가라, 아들아. 잘 가라 나의 아들아. 이제 영영 너를 볼 날이 없겠지. 너의 목소리를 들을 길이 없겠지. 너의 따듯한 손을 어루만질 수 없겠지. 다시는 너를 가슴 가득 안아볼 수 없겠지. 하지만 나의 아들아. 아아, 나의 전부인 아들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는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아들을 치료하는 과정 중에 그 자신도 간암에 걸린 그는 언젠가 아들에게 교회를 나가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며 후배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그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소설이다. 그렇다. 역기능(逆機能)의 아버지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는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희생과 사랑의 아버지이다. 소설 가시고기는 그런 아버지를 절절히 보여주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역기능의 아버지도 어디선가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되었을 터이니 무조건 머리 돌릴 일만은 아니다.
그 날 나의 종강예배 설교는 말라기 4장 5,6절을 본문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목회하라”는 주제의 설교였다. 도대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사랑하는 아버지. 기다리는 아버지. 용서하는 아버지. 기뻐하는 아버지. 지키시는 아버지. 이해하는 아버지. 가르치는 아버지....
혹시 기억하시는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400m 육상 준결승에서 그 종목의 메달 유망주였던 영국의 데렉 레드몬드(Derek Redmond) 선수가 중간도 못되어 쓰러졌던 사건. 의료진의 도움도 거부하며 다시 일어서서 뛰려다 또 쓰러졌던 그. 그 때 관중석에 뛰어 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아버지였다. “데릭, 뛰지 않아도 돼. 그만해도 돼.” “끝까지 달리고 싶어요, 아버지.” “그럼 함께 뛰자꾸나!” 아버지는 아들을 부축하며 천천히 달리다가 결승전 직전에 슬쩍 손을 놓아 아들 혼자 결승선을 넘게 한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아버지 이야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목회하라” 신학생들만 다그칠 일이 아니다. 내가 먼저 그래야 한다.
05.1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