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예배 (6)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3. 성경적인 예배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 1) 예배 예전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변증 우리는 성경에 규정하는 올바른 요소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예배를 제안하는 이들 중에는 로마 천주교회와 같은 장엄한 의식 중심의 예배 환원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오순절 교회나 빈야드(Vinyard) 운동과 같은 신비 체험 중심의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신시대를 수용하기 위해 설교 중심의 예배로부터 탈피하여 연극이나 팬터마임과 같은 도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의 새로운 연극 예배를 실시하고, 인터넷 예배를 보편화 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른 예배를 성경을 통해 살피고 유추하고 정립해야 할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생각에 따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율법에 선지자들을 통해 제시해주신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스스로 만든 것으로 제사를 드리다가 불에 타 죽임을 당한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그분이 명하신대로 드려져야 한다(레10:1-2).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변화하고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마5:17) 말씀에 기록된 예배의 본질은 바뀔 수 없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이 중요하였지만 제물 자체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자도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신약의 예배 또한 예배 행위가 예배자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배자가 수행해야 할 예배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할 때 사람의 몸과 마음이 따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령한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마땅한 것이다(롬12:1). 그러므로 하나님이 규정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 요소들은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례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적 참 예배를 찾아보아야 한다.

2) 우상숭배종교가 된 로마 천주교의 예배

초대교회의 예배가 형식적인 면에서 단순하고 내용면에서 말씀 중심적이며 영적이었다면, 중세 교회는 인위적인 요소가 예배를 복잡하게 만들고 형식화되기 시작되었고, 성경의 무지 때문에 이교적인 예배로 오염되면서 12세기 중엽에 프랑스의 피터 왈도(Peter Waldo)는 교회회의나 교황의 결정이 잘못될 수 있지만 성경만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에 기초한 교회 개혁을 외쳤다. 성경대로 믿고 생활할 것을 설교하면서 예배의 개혁을 주장함으로 성경적인 예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는 1229년 스페인의 발렌시아(Valencia)에서 교회회의를 열고 피터 왈도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100만 명이 넘는 그의 지지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함으로 성경적 예배 운동을 박해하였다. 천주교의 죄악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황청은 성경을 금지도서로 규정하고, 교황의 허락 없이는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지 못하게 함으로서 말씀의 빛이 전혀 없는 암흑시대를 만들어버리고 그 결과 예배는 무지와 미신 가운데 드려지게 되었다. 중세 시대에 말씀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예배는 점차 미신적이 되었다. 예배 때 성호를 그으며, 분향을 하는 등 인위적인 요소들이 비판 없이 교회에 유입되었다. 사제가 떡을 떼면서 이것은 내 살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땅에 내려와서 떡의 모양으로 변한다는 화체설이 중세인의 신앙이 되었고, 사제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을 땅으로 불려오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성도들은 떡으로 변한 그리스도를 받아먹기 위해 성찬상을 향해 무릎을 꿇었고, 성찬에 사용한 떡이 병든 자를 치료한다는 말까지 펴지면서 성찬에 대한 미신이 편만하게 되었다. 말씀에 대한 무지는 성인과 성물 숭배를 가져왔다. 성경은 고위 성직자의 전용물이 되었고 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은 사제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다가 무지한 사제들로 인하여 교인들은 하나님과 복음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보기보다는 저주하며 벌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고 거룩한 성인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였다. 성인 숭배는 복음을 위해 순교한 성자들을 기념하는 운동과 함께 시작하였는데, 인간이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순교의 공을 쌓은 성자를 통해 기도할 수 있다는 사상이 만연하면서 성인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성인숭배는 중세 말기에 이르러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부자들은 연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에 가기 위해 성물을 모아 숭배하였다. 이는 성자들의 유물을 잘 보관하게 되면 성자들과 하나님에게 특별한 은총을 입을 수 있게 된다는 사상이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널리 수집되던 성물 가운데는 예수께서 유아였을 때 차고 다녔다는 기저귀, 아기 예수가 머물렀던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가져왔다는 볏집,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St. Anna)의 손톱 등 예수님과 관련된 것과 여러 성인들의 유품들이었다. 로마 교황청이 교회회의를 통하여 온갖 미신적인 예배를 교회에 소개하고 성물을 보관하는 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간다고 선언하자 재력가들은 성물의 진위를 막론하고 성물로 보이는 것을 수집함으로 성물 숭배가 더욱 만연하게 되었다.

3) 교회 개혁자의 예배의 흐름

교회가 성인과 성물 숭배에 빠지고, 화체설 예배가 미신화 되자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일어났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는 “우신예찬”(The Praises of Folly)을 저술하여 성물 숭배의 어리석음을 풍자적으로 비판하였다. 독일의 교회개혁자 루터(Martin Luther)나 불란서의 개혁자 르페브로(Jacques leFevfre)도 성물 숭배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십자가의 파편들이 온 지구상에 얼마나 산재해 있는지 한번 생각하여 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목록으로도 족히 책 한권이 되고도 남는다. 작은 마을이라도 성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곳은 없다. 간단히 말해서 만일 찾을 수 있는 조각들을 모두 수집한다면 넉넉히 한 배에 실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증거하는 바 한 사람 예수께서 과연 그것들을 채우려고 하는 철면피가 아니라면, 그것을 운반하기 위하여 300명이 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분명 마귀적인 것이다.” 교회 개혁자들은 이와 같이 성물 숭배의 허구를 비난하고, 성경적인 예배의 회복을 주장함으로 무지와 미신으로 오염된 예배를 개혁하고자 앞장섰다.

영국에서 일어난 예배개혁운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헨리 8세의 수장령과 함께 영국은 로마 교황청과 결별했지만, 왕실과 교회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잔재인 미신적인 예배를 장려하였다. 이에 대해 청교도들은 미신적인 예배가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임을 밝히고 성경적인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곧 성물과 성상 예배, 성호를 긋는 행위, 사제 복장의 착용 등을 비판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던 초대 교회의 예배를 영국에서 회복하고자 했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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