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바라기

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인생은 바라보는 대로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가나안의 거인들을 보고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라며 벌벌 떨었던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처럼 ‘메뚜기 콤플렉스’에 빠집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배웁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고난이 동굴이 아니라 터널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만을 붙들고 살기 때문에 상처(SCAR)가 별(STAR)이 되는 축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바뀌려면 바라보아야 할 것과 바라보지 말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 누구,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목적과 태도가 달라지고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환경만을 바라보면 낙담합니다.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절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곧바로 물에 빠졌습니다. 기근을 만난 사르밧 과부가 밀가루 한줌, 병에 기름 조금 밖에 없는 것을 보았을 때 절망했습니다.

둘째로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나 자신을 바라보면 의인 의식에 빠지거나 죄인 의식에 노예가 됩니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져서, ‘나만 잘났다’라고 교만하거나, ‘나는 못났다’라며 자책하고 기죽어 삽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학문적으로, 종교적으로 최고의 실력자이고 지도자였으며 출세한 엘리트였지만 자신이 이룬 학력과 업적을 바라보지도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셋째로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불완전하고 불완전한 사람은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아내, 자녀, 건강, 재산, 친구를 잃은 욥은 친구들을 바라보았다가 조롱당했습니다. 친구들은 “악한 자만이 고난을 겪는다.”라며 욥을 정죄하고 훈계하며 그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반면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용광로 같은 풀무불 속에 던져져도 왕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중상모략과 참소를 당하고 사자 굴속에 던져질지라도 권력가들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넷째로 사단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예수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바라보게 합니다. 아예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나의 환경, 나 자신, 나의 주변의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단의 유혹을 한마디로 거절하시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요?

운동선수가 바라보아야 할 것에 ‘싱글 포커스’를 합니다. 축구 선수는 골대를 향하여 공을 차고, 투수는 포수를 향하여 공을 던지며, 마라톤 경주자는 오직 골인 지점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오직 예수님 한 분께 ‘싱글 포커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누리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 바라기’의 삶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칩시다. 예수님처럼,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오늘의 고난을 감당합시다. 십자가 후에 있을 면류관을 바라보고, 오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삽시다.

09.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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