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FT 전인 코칭 전문학교의 원장/임상 심리학 박사)
지난 칼럼에서는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서인 “경멸”과, 그 이면에 자리할 수 있는 자기애적 경향에 대해 살펴본 바 있습니다. 본 호에서는 자기애적 성향이 실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자기애적 특성이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외현적 자기애(Grandiose / Overt Narcissism)이고, 다른 하나는 내현적 또는 취약성 자기애(Vulnerable / Covert Narcissism)입니다. 이 두 유형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나, 연구에서는 이 둘이 모두 취약한 자존감 구조와 자기중심적인 해석 방식(self-focused processing)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외현적 자기애>
외현적 자기애는 비교적 쉽게 인식되는 형태입니다.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강조하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상황에 따라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는 이러한 모습 이면에 자기 가치에 대한 불안정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한 부부의 경우를 보면 남편이 외현적 자기애적 경향을 보이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요즘 대화할 때 목소리가 너무 높아지는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남편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당신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후 대화는 점점 방어와 반박으로 이어졌고, 결국 아내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현적, 또는 취약성 자기애>
반면 내현적, 또는 취약성 자기애는 훨씬 덜 드러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겸손해 보이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이 유형을 단순한 내향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고, 비판이나 거절을 쉽게 개인적인 상처로 받아들이며, 관계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례를 들자면, 아내가 내현적 자기애적 경향을 보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쁜 일정으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한 날, 아내는 “괜찮아요, 이해해요”라고 말했지만 이후 대화를 피하고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남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 채 혼란을 느꼈고, 결국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졌습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의 서운함과 해석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달라 보이지만, 이 두 유형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보일 수 있습니다.
<두 유형의 공통된 특징>
1. 사과의 어려움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기애적 성향과 관련하여 취약한 자존감(fragile self-esteem)과 수치심에 대한 높은 민감성(shame sensitivity)을 중요한 요소로 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인정이 단순한 사실 수용을 넘어, 자기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형식적인 사과는 가능할 수 있으나, 내면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2. 또 하나 주목할 개념은 자기애적 분노(narcissistic rage)입니다. 이는 단순한 화가 아니라,
자기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껴질 때 나타날 수 있는 과도한 정서 반응입니다. 외현적 자기애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비교적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내현적 자기애에서는 감정적 철수나 침묵, 관계 단절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 자기 개념을 보호하려는 방어적 반응으로 이해됩니다.
회복은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사랑은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자기애적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누군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반응의 이유를 알게 될 때, 관계 속에서 반복되던 갈등의 의미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작은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내가 조금 방어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충분히 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인식이 쌓일 때, 경멸 대신 이해가, 방어 대신 연결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관계 가운데, 작은 이해가 큰 회복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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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