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교회
시편 141편은 사무엘상 24장을 배경으로 하여 그 사건을 회상하며 지은 다윗의 시입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나온 그 사건이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손길을 기대하며 사울의 옷자락만 자르고 살려준 사건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도망 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상대방은 악의를 가지고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다윗의 잘못이라면 너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이겠죠. 너무 잘 나갔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입니다. 하여간 다윗은 엔게디에 있는 한 동굴에서 숨어서 지냈습니다. 그것도 삼상 24:3절을 보면 그 동굴 깊은 곳에 있었다고 나옵니다. 동굴 입구도 아닌 동굴 깊은 곳이니 햇빛도 전혀 비춰지지 않는 곳에서 지낸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의 시를 보면 환란에 대처하는 다윗의 자세가 남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원망해도 되는 상황인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스스로의 허물을 살피며 근신하는 신앙적인 자세를 보인 겁니다.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래도 혹시 자신이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혹시나 지금 처한 상황 때문에 죄를 범하지는 않을지 미리 대비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자세를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1절. 다윗은 부르짖었습니다. 환란이 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부르짖었다는 것 자체보다는 그가 어떤 내용으로 부르짖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환란이 올 때 기도를 합니다. 5절 후반부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바른 신앙의 자세로 기도를 해야만 바른 기도가 됩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도 많고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환란 때에 어떠한 기도가 필요한지 살피겠습니다.
환란 때에 필요한 첫 번째 기도는 내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3절. 쉽게 말하면 말조심을 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내가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도 환란을 당할 때,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입으로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던 겁니다. 일반적으로 문을 지킨다는 의미는 문이 열려져있는 상태가 아니라 닫혀져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도 환란 중에 입을 열면 부정적인 말부터 나올 테니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겁니다. 내 상황이 편하고 좋을 때 입을 열면 긍정적인 말들이 나올 확률이 높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특히 다윗처럼 환란을 당할 때에는 너무 억울하기에 입을 열면 원망부터 나올 수밖에 없겠죠. 그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아예 입을 열지 않는 것이고, 최대한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혹시 자기 자신에 대한 말이면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관한 부정적인 말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이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들을 수도 있죠. 3절을 보면 왜 다윗이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했겠습니까? 파수꾼을 세우지 않으면 다윗의 입에서도 원망이나 불신앙적인 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다윗과 같은 신앙의 사람도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파수꾼 여러 명이 필요하겠죠.
잠13:3절.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욥은 정말 온전한 사람인데 너무나 억울한 환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억울한 고난 앞에서 욥과 그의 아내가 보인 반응은 전혀 달랐죠. 욥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는데, 이것은 가장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욥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욥2:10절,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다윗도 환란의 때에 그러한 모습을 보였죠. 환란 때에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환란 앞에서 내 자신과 신앙을 돌아보되 특히 내 입술의 상태를 돌아보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입술의 문을 잘 지키길 바랍니다.
환란 때에 필요한 두 번째 기도는 내 마음을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4절은 죄악과 타협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인데 주기도문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면 죄와 타협하게 하는 유혹이 있음을 알 수 있죠. 그것이 바로 4절에 나오는 진수성찬입니다.
악인들의 진수성찬이란 악인들이 추구하는 세상적인 안락함과 화려하고 육감적인 모든 의식주 생활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표현입니다. 지금 우리도 자신의 생활이 편하고 안락할 때에는 악인들의 진수성찬에 별로 흔들리지 않죠. 지금 내 배가 너무 부른 상태라면 어지간한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배가 고프면 평소에는 정말 손이 가지 않았던 음식도 일단 보이면 집어서 먹게 되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당시 다윗은 동굴에서 지냈는데 그것도 가장 깊은 곳에서 지냈죠. 잠자리가 편했겠습니까?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사울에게 잡힐까 봐 떠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진수성찬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내 처지가 정말 궁하면 양심이고 뭐고 원초적으로 행동할 위험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생계형 범죄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죠. 삼상24:3절을 보면 사울 혼자 용변을 보려고 굴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쭈그려 앉았습니다. 그때 다윗의 사람들 중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 얼마든지 죽여도 되는 상황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그 상황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여도 되는 합리적인 이유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사울이 자꾸 죽이려고 했던 것이니 이것은 충분히 정당방위의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백성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고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죠. 그러니 다윗이 그 상황에서 사울을 죽여도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편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것도 정말 밑바닥에서 사는 상황에서 마음을 굳게 지킨 것은 대단한 신앙입니다. 입술을 지키는 것만큼 마음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상황에 따라 마음이 계속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환란 때에도 마음을 굳게 지키길 바랍니다.
환란 때에 필요한 세 번째 기도는 내 귀를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5절은 이런 의미입니다. 다윗의 잘못을 책망하는 의인의 말을 들으면 그를 사랑하고 환영하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게 받겠다는 다윗의 겸손한 마음을 나타낸 겁니다. 귀를 닫는 것이 아니라 열겠다는 것이죠. 환란을 당하면 사람들이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습니다. 환란을 당하면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란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듣고 싶은 말에는 귀를 열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에는 귀를 닫습니다. 하여간 환란 때에는 조금만 아쉬운 소리를 해도 지금 내 처지가 이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원망합니다. 그 상황에서는 잘될 것이라는 말에만 귀를 열지, 잘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듣기도 싫어해 귀를 닫는데 그렇게 하다가 더 망하는 사람들이 많죠.
다윗 주변에는 악인도 있었지만, 의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의 말은 듣지 않으려고 했고, 의인의 책망은 잘 받아들이려고 했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악인은 사탕발림과 같은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는 반면에 의인들은 쓴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고 쓴 것이 아닙니다. 달더라도 내 영혼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귀를 닫아야 하고, 쓰더라도 내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귀를 열어야 합니다. 아무리 달콤해도 악인이 나에게 하는 말은 결국 나를 해치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다윗이 밧세바 사건 때 여러 죄들을 저질렀지만, 다윗 주변에는 다윗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어영부영 흐르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쓴소리를 할 사람을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나단 선지자입니다. 나단은 전할 말을 다 전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귀를 열어서 듣고 회개했습니다. 비록 나단의 말을 들을 때에는 속이 쓰렸겠지만, 그는 귀를 닫지 않고 귀를 열었죠. 귀 관리가 잘 되었던 겁니다. 이것이 다윗과 우리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바른 말인 줄 알면서도 귀를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듣고 신앙적인 권면을 들었음에도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귀 관리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인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착각해 귀를 닫았고, 내가 들어야 할 말이지만 듣기 싫어서 귀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계속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들을 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내 주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씀들을 들을 때 속이 쓰리더라도 귀를 열어놓길 바랍니다.
환란 때에 필요한 네 번째 기도는 내 눈을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8절. 내 눈이 주께 향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도 참 어려운 기도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현실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 눈이 주께 향하게 해달라는 것은 현실이 편하고 별 일 없을 때 주로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당장 먹고 살 것이 없는 상황이고, 다윗의 경우에는 챙겨야 할 식구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현실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의 수많은 시들을 보면 그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위인이라고 우리와 신앙의 DNA가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약간 다른 점이 있는데 그 다른 것이 신앙의 위인을 만듭니다.
입술, 마음, 귀, 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위인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사람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환란 때에도 입술, 마음, 귀, 눈을 잘 관리하고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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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