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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아직 오지 않았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얼마 전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갈 때 30여 분이 연착되었다. 올 때도 그 정도의 연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움츠렸던 항공 업계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며 살짝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30분이 아닌 3시간 늦게 출발한 것이다. 중간에 연착 이유를 안내방송으로 듣게 되었다. 조종사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행기도 있었고, 승무원도 있었고, 승객도 있었다. 그러나 조종사가 없으니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늦잠 자다가 못 오나, 오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니면 조종사가 갑자기 바뀌었나, 여러 생각 가운데 맞이한 조종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을 가로질러 비행기 안으로 쑥 들어갔다. 우리도 얼마 있지 않아 탑승할 수 있었다. 승무원이 출발 때 들릴 듯 말 듯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정작 조종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으니 조종사를 따듯하게 이해해 주고 싶어도 이해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백 수십 명에 이르는 승객들의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 간 채 비행기는 밤늦게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에는 허드슨강이 흐른다. 뉴욕 업스테이트부터 맨해튼에 이르는 수려한 모습의 허드슨강이 통곡의 강이 될 뻔했다. 2009년 1월 15일 오후, 미국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불과 일분 만에 비상 상황을 맞게 되었다. 새떼와 충돌한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엔진을 모두 꺼야 했다. 조종사 체슬리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에 동체로 불시착하기로 결단하였다. 조종사는 승객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행동 지침을 일러 주었다. 마침내 동체착륙은 성공했고 비행기 안에 155명에 달하는 승객과 승무원은 안전하게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조종사는 모든 사람이 다 내린 뒤에도 마지막까지 비행기 안을 두 번이나 살펴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조종사의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책임과 역할은 막중하다. 조종사가 자기 비행기 자리에 아직 없다면 승객들이 어떤 사람이든, 승무원이 얼마나 노련하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조종사가 그 자리에 있다 하여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승객들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 어떻게 이르겠으며, 모든 비상 상황에 최고의 역량과 고도의 헌신을 쏟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가장 먼저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하고 가장 나중에 자기 자리를 떠나겠다는 마음과 자세가 아닌 조종사가 운행하는 비행기 안의 승객과 승무원은 비애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실제 앞서가셨다. 리더의 자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친히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다. 단체 여행 중에 필자가 목사인 것을 여행 안내자가 알게 되었다. 갸륵한 마음으로 그가 들고 다니던 초록색 깃발을 내가 들고 다니겠노라 자처했다. 그 깃발을 든 다음부터는 몇 날 동안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고 내 시간도 내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잘 못 가면 30여 명이 우르르 틀린 길로 가는 것이요 내가 내 자유시간을 누리겠다고 느슨해 있으면 내게 일을 맡긴 여행 안내자의 계획이나, 모든 여행객의 시간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조종사가, 깃발을 든 자가, 리더가 있어야 할 각자의 자리에 끝까지 책임지리라는 마음으로 먼저 와 있다면 그들의 공동체는 바르게 갈 것이요 도중에 예상 못 한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다. 

08.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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