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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지나가는 자들이 아우성친다. 십자가에 그렇게 달려 있지만 말고 내려와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한다. 왜 못 내려오시겠는가. 열두 번도 더 내려오실 수 있으나 끝내 내려오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안 내려오셨다. 다양한 사람들이 십자가 주변에 있었다.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 있으니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인류 구원의 길이 십자가 외에 없으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비워두고 내려오실 수 없으셨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무지몽매한 무리의 외침에 “시간”을 더하여 합세한 이들이 있다. 그들이 누군지 천천히 확인해 보시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29-32).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이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외쳤다. 머리엔 가시관, 손과 발에 못, 온몸에 채찍 자국, 십자가의 상처와 고통이 가장 격렬해져 갈 때, 유혹의 소리도 점점 커진다. 그만 머뭇거리고 지금 당장 십자가를 벗어던지라고 한다. 지금은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유혹의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다. 세 가지 귀한 금이 있다는 것이다. 황금, 소금 그리고 지금. 그렇다. 지금이 곧바로 엄청난 미래의 도약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지금이 순식간에 절망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의 지금은 어떤 지금인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를 이기신 예수님은 어디까지 가셨나.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23:46) 숨지실 때까지 십자가 위에 계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조롱소리만 들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도 받으셨다. 육체의 고통보다 사람의 조롱보다 하나님의 외면이 더 힘들지 않으셨겠는가. 지금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셨다. 고통과 어두움 속에서도 빛난 신뢰.

로마의 카타곰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자리. 지하 깊은 그곳을 잠깐 방문할 수는 있어도 머문다던가 더구나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이게 뭐냐, 지금 당장 이 어두운 지하를 버리고 저 찬란한 지상으로 올라가라”는 마귀의 부추김을 얼마나 받았겠는가. 카타곰베의 그들은 평생 동안 “지금의 유혹”을 “지금의 충성”으로 살아낸 것이다. 그들은 고통과 어두움의 지하에서 바로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우리에게도 “지금 네 짐을 내려놓으라, 지금 그 일을 그만두라, 지금 재미있는 길이 있다.” 지금이 지금, 감언이설과 교묘한 춤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결코 흔들리지 말자. 그날까지.

04.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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