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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모님도 그러셨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생각지 못한 몇 날을 지나게 되었다. 선교지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이 막혀 오늘날 밤은 또 어디서 자야 하는지, 언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지 자신들도 모르시던 선교사님 부부와 몇 날을 같이 지내게 된 것이다. 28년 전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섬기기도 했던 분이시다. 주일 오후에 말씀을 전하시면서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설명해주셨는데 언론에서 보고 듣던 것과 느낌이 달랐던 것은 그 땅이 사역과 삶의 터전이요,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이 그 위험한 곳에서 지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선교사님의 생생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몇 번의 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는데 그 중 어느 식사 중간에 자신도 선교사인 사모님께서 나지막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거기서는 물도 제대로 못 마신다는데 내가 여기서 이렇게 먹어도 되나....” 우크라이나를 잊지 못하시는 사모님이 자신에게 작게 한 말이지만 건너편에서 잘도 식사하던 내 마음이 크게 저미었다.

 

사모님은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남기셨다. 우리는 모든 것이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당연한 일상(日常)이다. 어딜 가도 정상이다. 불편한 것이 거의 없다. 시계 톱니바퀴 돌듯 잘 돌아가는데 익숙하다보니 다소 지루하게도 느껴지는 당연한 일상 속에 살고 있다. 아니다.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의 자리가 일상이다. 한동안 아주 자주 부르다가 요즈음은 불러본 기억이 별로 없던 찬양을 다시 불러본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그렇다. 일상을 잃은 사모님 말에서 일상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상은 풍성한 은혜요 엄청난 축복이요 놀라운 기적이다.

 

사모님은 떠나시면서 이런 글을 남겨 주셨다. “....특별히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적으로 우크라이나와 저희를 위해서 교회가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상황을 아파함과 눈물로 공감(共感)해주었다고 감사하셨다. 사람이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공감이리라. 남편에게 공감해주는 아내보다 누가 더 아름다우랴. 아내에게 공감해주는 남편보다 누가 더 멋지랴. 성도에게 공감해주는 목회자, 목회자에게 공감해주는 성도, 모두 행복하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공감지수(共感智數)는 100%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예수님의 공감은 아파함과 눈물 이상(以上)이셨다. 지극히 작은 자의 상황에 아파하고 눈물 흘리시면서 자신을 아낌없이 주셨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b). 진정한 공감은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아파함과 눈물을 넘어 그 무엇인가를 요청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 많은 경우 그의 말과 글이 남아서 남아 있는 자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사모님도 그러셨다. 

04.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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