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요충지인 흑해 연안 크림반도 지역을 점령했다. 필자는 바로 그 점령 직전에 크림반도 얄타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정리하려고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가 모여 회담을 벌였던 곳이다. 그곳을 둘러보면서 인류 역사상 멈춤이 없었던 전쟁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종 미사여구로 수놓은 전쟁의 명분 뒤에는 언제나 영토에 대한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새삼 생각해본 것이다. 나라만이 더 많은 영토를 얻기 위한 전쟁은 벌이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도 싸운다. 세계 어느 곳이나 공간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집값이나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주어진 공간은 제한되어있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넘치니 치고받는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전쟁과 다툼을 불사한다. 공간 차지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나라마다 군비확충을 위한 낭비는 없을 것이요, 작은 공간이라도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이웃끼리의 왜 싸우겠는가. 사실 사람들에게 공간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공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하루 24시간씩 똑같이 주어진다. 모든 개인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이니 남의 시간을 빼앗을 필요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기가 지혜롭게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마친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좋으리라. 기록경기에 나선 이들에게 0.1초는 너무나 크고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아슬아슬하게 응급실에 도착하여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주 짧은 시간이 어떤 큰 공간의 소유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를 의미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로 만난다면 똑같은 시간에서의 가치 창출(創出)은 사람마다 현격히 다를 것이다.
사람에게 공간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원이다. 화려한 공간과 다양한 시간 속에서 누릴 것을 다 누려본 솔로몬이 왜 그 끝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자조(自嘲)했겠는가. 그는 모든 경우의 시간을 다 열거한 뒤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논하였다. 인생은 그 마음에 영원이라는 것이 영원히 심어진 존재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면서 일생을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 공간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의 가늠자가 아니다. 이 땅의 시간에서 오래 살고 짧게 사는 것이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시금석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유일하고 진정한 기준은 영원에 있다. 하늘이 기준이다.
하늘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고 짧은 생을 멋지게 산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청년 윤동주 시인이 그렇게 살았다. 이 땅에서 공간을 넘어서고 시간을 넘어서 삶을 죽는 날까지 살다가 그토록 그리던 하늘로 갔다.
02.2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