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남편 가게의 많은 물건을 도둑맞은 날, 그 아내가 웃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권사님은 밝게 웃었다. 그날 그 소식을 교역자들과 함께 전화로 듣고 있던 나도 웃었다. 어떤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하시는가. 필자는 수사드라마를 좋아한다. 오래된 작품들이긴 하지만 수사반장도 재미있게 보았고 형사콜롬보도 그랬다. 요즘 나오는 수사드라마도 재미있을 터인데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마땅치 않아 보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수사관들의 소신이 있다고 한다.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소신이다. 수사드라마에서도 그렇다. 모든 범행에는 실낱같은 흔적이라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것을 찾고 찾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권사님 남편 가게에 들었던 도둑은 너무 확실한 흔적을 남기고 갔다. 그날 경찰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긴장감이 감도는 수사과정이 필요 없었다. 도둑이 물건을 욕심껏 챙기느라 자신의 스마트폰을 떨어트리고 간 것이다. 너무 확실한 흔적을 남기고 떠난 도둑,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범행만이 아니다. 모든 삶에는 흔적이 있다고 한다. 시드는 풀과 같고 떨어지는 꽃과 같은 인생이지만 반드시 크고 작은 삶의 흔적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살다간 자리에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믿기지 않지만 그의 작품 활동 10년 동안에 2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화상도 꽤 있는데 그의 삶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자화상은 슬픔을 머금은 모습이다. 그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은 어두운 삶에 빛을 소망하는 그의 내면을 고스라니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 중에는 구두를 그린 그림이 여럿이 있다. 웬 구두인가? 그냥 보면 낡은 구두들일 뿐인데 곰곰이 보면 가슴 먹먹한 흔적들이었다. 험한 인생길을 이리저리 걷고 걸었던 구두 주인공들의 애절한 삶의 흔적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격언이 있다. “한 번 뿐인 인생, 곧 사라지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들만 영원히 남게 되리” 짧은 인생이 영원히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음을 일러주는 격언이다.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라고 말한 조지 뮬러가 그랬다. 그의 짧은 삶으로 누구도 잊을 수 없는 기도의 흔적을 남겼다. 그에 대한 책의 제목이 ‘5만번의 기도응답’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기도 하였고, 젊어서 술과 카드, 그리고 감옥까지 경험했었다. 그는 회심 이후 기도의 삶에 진력했다. 그는 5개의 큰 고아원을 세웠다. 그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직 기도를 통해 수많은 고아들을 먹일 음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았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의 기도에 응답이 아닌 실망을 주지 않으셨다,
며칠 전 필자가 속한 교단의 목사 장로 기도회가 대면으로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모였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 어려운 때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더 이상 사망의 잠에 빠져 있지 말고 깨어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셨다. 말씀을 받고 여러 기도제목을 가지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크게 합심기도 했다. 기도회를 참석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지인의 장례식이 있었다. 오열하는 가족 가운데 그가 남긴 삶의 뚜렷한 흔적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이 땅에 살다간 흔적이 무엇이어야 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기도와 장례가 오버랩 되면서 무엇보다 기도가 삶의 흔적이 되고 싶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이론이 아니었다. 단지 가르침의 주제만이 아니었다. 기도는 예수님의 삶이었다. 40일 금식기도로 시작하신 공생애는 때마다 일마다 기도하신 여정이셨다. 히브리서 5장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 아니셨나.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가 위에서도 계속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 도둑 같은 어이없는 흔적이든, 고흐 같은 예술이든, 뮬러 같은 기도이든. 그렇다면 나는?
02.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