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장로님이 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 장로님이 집 앞에서 우셨다고 한다. 심한 고열(高烈)로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장로님이 위험한 고비를 넘기시고 퇴원하셨을 때 십여 명의 시무장로님들이 선배 장로님을 찾아가 문밖에서 위로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신 것이다. 은퇴 장로님은 시무 장로님으로 계실 때 교회에서 무슨 일을 맡기든지 최선을 다하시면서 좋은 열매를 맺곤 하셨다. 부인이신 권사님의 건강이 어려워 오랫동안 돌보시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셨다. 예기치 못한 후배 장로님들의 심방을 받으시면서 장로님은 큰 감동을 하여 우신 것이다. 이틀 후 선배 장로님을 찾아가셨던 장로님들 중에 젊은 장로님 몇 분이 이런 노래를 이태리 식당에서 부르셨다. “오 솔레미오?” 아니다. 오 솔레미오 가사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햇살”이란 단어가 있긴 하지만 결이 다른 노래였다. 이런 가사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그 노래를 부른 그 날은 필자의 생일이었다. 장로님 부부들이 필자 부부를 초청해 뜨거운 기도와 맛난 식사로 축하해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특별한 시간, 바로 그때 젊은 장로님들이 함께 부른 노래의 가사가 다음 날이 되어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장로님들의 마음에는 “목사님, 외로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면서 힘들고 소외된 성도들을 끊임없이 돌보는 자신들의 손길들도 생각하였을 것이다. 고마움으로 가득 찬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했다. “나는 잘 사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살다 마치면 나의 삶은 과연 ‘finish well’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이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그동안 내가 생각 못했던 또 하나의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곳에는 많은 사람이 지쳐 있고, 울고 있고 그곳에서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워한다. 누군가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면 먼저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이 그곳에 많다. 그들이 지금 어둠 속에 있다고 소망이 없는 자들이 아니다. 놀라운 사람들이 그곳에 있고 그들 자신도 모르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누군가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준다면 그들이 일어나면서 이제까지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일들을 일으킬 것이다. 디베랴 바닷가 아침은 햇살로 가득 차 올라왔지만, 베드로의 어두움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런 베드로에게 손을 내미신 분이 계시다. 베드로가 배신했던 예수님이시다. 배신의 아픔을 아시리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배신으로 잠 못 이룬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가 당한 그 어떤 배신과는 비교가 안 될 배신의 아픔을 뚫고 베드로에게 내민 예수님의 그 손길이 없었다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올해도 다 저물어가는 깊은 가을인데 또 하나의 할 일이 남이 있다는 것을 내 생일날 저녁, 장로님들 때문에 깨닫게 되었다.
10.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