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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의 미학(美學)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일 년을 연기했건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팬데믹과 그에 따르는 반대운동 등으로 도쿄 올림픽은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개막된 도쿄 올림픽은 무관중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경기가 큰 혼란 없이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 그 기원이 있고 근대올림픽은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일으켰다. 그는 1894년에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Faster, Higher, Stronger)”를 올림픽의 구호로 내세웠다. 지난 127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올림픽의 구호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 함께(Together)”이다. 오랜 시간 동안 “빠름”의 가치가 중요시되던 올림픽이 혹독한 고난의 시간을 겪고 “함께”의 소중함을 품게 된 것이다. 

 

“빠름”의 가치를 노래하는 일은 이미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도 있었다. 아이라니하게도 그 고대 그리스에 “빠름”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을 갈파한 사람이 있었다. 노예 출신이자 이야기꾼이었던 아이소프스이다. “이솝 우화”로 알려진 그의 이야기 가운데 “토끼와 거북이”가 있지 않은가. 토끼는 빠른 경주자였다. 하지만 거북이가 마지막에 먼저 도착한 선착자가 되었다. 이 우화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꾸준한 성실”이 “교만한 빠름”을 이긴다는 교훈은 분명히 담고 있다. 그 이솝 이야기 가운데 “곰과 나그네”의 이야기를 잘 아시리라.

 

어느 날 두 친구가 같이 여행을 떠났다. 두 친구가 큰 숲속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눈앞에 한 마리의 곰이 나타났다. 한 친구는 잽싸게 바로 근처의 큰 나무에 기어올랐지만 다른 친구는 도망치지 못했고 그냥 땅에 쓰러져서 죽은 척했다. 곰은 죽은 척하는 친구에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입을 대고 있다가 잠시 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무 위로 도망친 친구는 살았다 싶어 내려왔다. 그리고 쓰러져 친구에게 "곰이 아까 너의 귀에 대고 뭔가 속삭였던 것 같은 데 무슨 말을 한 거야?" 라고 물었다. 쓰러져 있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곰이 내게 위험한 상황에서 친구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매정한 친구와는 빨리 헤어지라고 말했어." 이솝은 "토끼와 거북이"에서 "빠름"의 가치를 경계하였고 "곰과 나그네"에서 "재빠름"의 질타와 "함께"의 미학(美學)을 강조하였다.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보스턴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 화상통화가 걸려왔다. 아들과의 통화보다는 18개월 된 손녀와의 영상통화가 우선이었고 전부였다. 나는 "빨리"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데 18개월의 손녀가 계속 장난을 건다. 손녀가 "어흥" 하면 내가 "아구 무서라" 라고 하며 숨는 행동을 해야 한다. 손녀는 좋다고 하며 내 바쁜 사정은 모른 채 계속 "어흥" 한다. 손녀는 "빠름"에 대한 가치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함께"의 즐거움은 너무 잘 안다. 아이가 "빠름"은 몰라도 살 수 있지만 "함께"가 없이는 살지 못하리라. 왜 아이뿐이겠는가. "함께" 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요 하나님이 친히 참여하시는 탁월한 삶의 방식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렇다. "함께"에는 두려움이 없다. "함께"는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 "함께"에는 놀라움과 즐거움 넘친다. "함께"에는 위대한 승리가 따른다. 이토록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함께"의 미학(美學)은 미학 중의 미학이 아닐까.

07.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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