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4월 28일 수요일 오후, 연락을 받고 급히 심방을 갔다. 92세의 권사님. 그 날 아침 권사님이 직장에 출근하려던 따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꿈에 흰 버선을 신었단다, 내 발에 흰 버선을 신겨다오.” 의아해하며 어머니에게 흰 버선을 신겨드렸던 따님은 직장에 나가서도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 교회로 연락하여 심방을 부탁한 것이다. 권사님은 교회에서 가장 먼 곳에 사시는 분들 중의 한 분이시다. 그 먼 길을 오고가면서 보였던 모습은 한결 같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 같은 모습이었다. 서둘러 권사님을 찾아뵈오니 기력은 많이 약해지셨으나 의식은 또렷하시어 예배도 잘 드리셨고 여러 대화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었다. 권사님이 누워 계신 침대 앞에 이런 성경구절이 붙어 있었다. “시편 116편 12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따님에게 들으니 어머니가 그 날 자신이 잘 보이는 곳에 써서 붙여 달라고 하신 말씀이라고 하였다. 권사님은 침대에 눕듯이 기대어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께 보답한 것이 없다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면서 뜻밖의 말씀도 하셨다. “저는 이 4월에 주님에게로 가고 싶어요.” 눈으로 볼 때는 위급한 상황이 전혀 아니셨다. 나만 그렇게 본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판단하였음이 틀림없다. 무슨 말씀이시냐며 빨리 일어나시어 교회에서 뵙자고 하며 교회를 돌아와 수요예배를 드렸다.
4월 30일 금요일 아침, 4월의 마지막 날 그 아침에 급한 연락을 받았다. 권사님이 천국에 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뵈 온지 만 하루하고 절반이 되었을 뿐이다. 4월에 떠나고 싶다고 하신 권사님은 4월 마지막 날에 가족과 우리 모두를 떠나셨다. 그 이틀 전 심방 때에 하신 말씀이 있었다. 자신이 4월에 떠나고 싶은 이유는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날도 있는데 자신이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고 않고 자녀들이 5월을 즐겁게 지내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권사님은 그의 따님이 20여 년 전 혼자된 이후로 딸의 집으로 이사와 딸이 직장에 다니는 동안 그의 어린 세 아들을 도맡아 반듯하게 기르셨다. 자신의 네 자녀도 딸의 세 자녀도 희생으로 사랑으로 키우시고 자식들의 5월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셨다. 권사님의 바램대로 4월에 떠나셨지만 나는 그분의 빈자리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이렇게까지 하셨습니까?”
나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이렇게 희생하시며 사시는 것입니까?” 이런 시(詩)를 아시리라. “장난삼아 어머니 등에 업었더니 너무 가벼워서 울컥, 세 걸음도 못 가네” 평생을 자식에게 자신을 내어주시느라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없이 가벼워지신 어머니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면 “어머니”이리라.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傳記) 작가가 이런 말을 하였다. “하나님은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되는 조건을 한 가지도 주지 않으셨다. 다만 그에게 빈곤(貧困)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셨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프랑스여, 위대한 어머니를 가지게 하라. 그리하면 위대한 자녀들을 갖게 될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 그것은 한 국가가 소유한 보물 가운데 최대의 보배이다.” 보배임에도 그 각자의 이름은 잘 모르겠는 어머니. 밥도 대충 드시고, 남편과 자식 때문에 속도 끓이시고, 친정엄마와 친정식구 보고 싶어 남몰래 흐느껴 우는 어머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그렇게 사시면서도 기뻐하십니까?
05.0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