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반려동물을 키우시는가? 얼마 전 조카가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강아지를 편도 7-8시간 운전하여 가서 샀는데 3,700불이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키우는데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것이다. 교회 어느 집사님 개는 미용(?) 한 번 하는데 70불이 든다고 한다. 나는 머리 커트하고 샴푸에 팁까지 포함해도 30불이면 된다. 그래도 개는 키우는 보람이 있는 것을 본다. 끝까지 충성스럽게 주인을 따라다니니까. 나는 개도 고양이도 안 키우지만 고양이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심방 중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 가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는 되게 도도(?) 하다. 사람 눈치를 별로 안보는 것 같다. 걷는 것도 마치 그 집에 주인이라도 된 듯이 거만하게 걷는다. 고양이를 키우는 묘미도 있겠지만 그 묘미를 잘 모르는 내겐 주인 행세하는 고양이를 보고 “우째 이런 일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사람들은 명품에 열광한다. 명품을 부러워하고 명품을 소유하기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명품뿐이 아니다. 수많은 상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그 상품을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탐심은 사람들에게서 조금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싸움도 살인도 불사한다. 도대체 누가 그 명품과 상품을 만들었는가? 사람이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것들이 사람의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상품의 종이 되는 것, 자본주의가 어리석게 빠지기 쉬운 덫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더 심하다. 그들이 주창하는 유물주의(唯物主義)는 신이 없다는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눈으로 보는 물질만을 신으로 강력하게 섬기는 패역한 사상이다. 자기가 만든 것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고 “우째 이런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주의로 가는 길목에 또는 그 곁에 사회주의가 있다. 사회주의는 도덕주의를 앞세워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집단의 사상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가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아무런 제동장치나 기준이 없는 사회주의의 알량한 도덕(Moral)은 결국 추해지고 온갖 부정부패를 양산해 낸다. 그런 이념에 포로가 되고 종노릇 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사악한 열매를 보면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이신가.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바울도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20:28). 교회는 이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거하시는 곳이다. 자본주의에서 일탈(逸脫)한 번영신학(繁榮神學)이 교회에서 주인행세하려는 시도가 적잖이 있었다.
공산주의는 또 어떤가. 한반도에서도 공산주의가 왕이나 된 것처럼 교회를 핍박하고 말살하려는 것을 해방이후 지금까지 무수히 보아온 바이다. 물론 한반도 옆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의 교회를 향한 만행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결코 지나친 폄하는 아닌데 칼 마르크스의 책을 비롯 몇 권 책을 읽고 자기들만의 시각으로 세상 문제를 판단하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성토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사로잡힌 자들이 권력을 갖게 되자, 온갖 이유를 들어 교회를 이리저리 흔들고 괴롭히고 조정하려는 눈뜨고 못 볼 행태가 도처에 있다. “우째 이런 일이....”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고 종은 종답게 살자.
08.2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