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시인(詩人)들은 경이롭다. 어떻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몇 줄의 글로서 그토록 심오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시를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그러나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모든 사물의 본질이 무엇이며 여백에 숨겨진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의 하늘과 땅, 강과 산은 나와 왜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지 자못 궁금하다. 박인환 시인은 여기저기 볼 수 있는 여름날의 호숫가와 가을의 공원에서 애잔한 통찰력을 끄집어내어 심금을 울린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27세의 나이로 이 땅의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시는 또 어떤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스물세 살 청년의 시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 시인들은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을 건들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그들은 건조한 이 땅에 풍성한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을 풍성케 할 시인(詩人)도 필요하지만 시인(是認)도 필요하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是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하늘을 기쁘게 한다. 시인(詩人)이 쉽지 않듯이 시인(是認)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였다. 그런 시인에는 자기들의 주장하던 자신의 우선순위, 물질, 시간, 감정, 취미, 습관, 심지어는 직업과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였다. 그러한 시인 속에는 예수님이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그 이유를 따지지 않고 절대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29세의 나이로 예수님을 시인하다 순교한 짐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는 이런 말도 하였다. “보배도 하나, 시선도 하나, 주님도 하나이면 된다.” 그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으로 이 땅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 잃었으나 이 땅의 어떤 아름다운 시(詩)보다 더 아름다운 시인(是認)을 남겼다.
윤동주, 짐 엘리엇, 그들은 서른도 안 되어 이미 충분한 시(詩)를 남겼고 뜨거운 시인(是認)을 남겼다. 11살짜리도 이렇게 했다는 글을 읽었다. 루마니아의 푸로레스코 목사가 공산당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심한 고문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자 공산당들은 그를 회유시키기 위하여 그의 11살짜리 아들도 잡아다가 그 앞에서 심한 고문을 가하였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자기가 고문을 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아들이 고문을 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고문을 당하던 11살짜리 아들이 이렇게 외쳤다.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나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 십대, 이십대의 사람들. 아, 나는 벌써 이순(耳順)을 훌쩍 넘겼건만 도대체 무슨 시(詩)를 지었고 어떤 시인(是認)을 하였는가. 세상은 목말라 구한다. 아름다운 시(詩)를. 하늘은 애타게 찾는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是認)하는 자를. 나도 시인이 되고 싶고 시인도 하고 싶다.
08.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