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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믹 이후의 세계관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팬더믹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누구나 궁금해 한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변화들이 있으리라 예측하고 그런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바뀌는데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어떻게 될까? 기존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세계관이 형성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현존하는 세계관은 일단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신의 존재와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지만 신이 개입하셔서 계속 섭리하신다는 기독교 세계관. 둘째, 신의 존재와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지만 신은 우주를 시계태엽 감듯이 자연법칙으로 감아 놓고 신을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적 세계관. 셋째,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자연주의 세계관. 넷째, 신의 존재와 인간의 자율성을 함께 부인하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허무주의 세계관. 다섯 째, 신의 존재와 인간의 자율성을 희미하게 인정하며 뭔가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실존주의 세계관. 여섯째, 신의 존재와 인간의 자율성을 혼동하며 합쳐버린 범신론적 세계관. 

이 여섯 세계관은 자기들의 영역에서는 반짝거리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왔다. 펜더믹 이후에 이런 기존 세계관들은 붕괴되거나 변형되어서 또 다른 세계관이 등장할 것인지는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세계관은 그들의 신관(神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세계관들을 비집고 들어올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보다는 새로운 사조(思潮) 정도가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세계관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반짝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듯이 모든 세계관 가운데 참다운 세계관은 하나뿐이다. 다름 아닌 기독교 세계관이다.

기독교 세계관도 강조점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되니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무조건 다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금 가운데 정금이 있듯이 정금 같은 기독교 세계관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도 이렇게 다양하게 구분된다. 이 땅을 철저히 외면하는 내세 지향적 기독교 세계관. 이 땅을 철저히 동화되는 세상 지향적 기독교 세계관. 이 땅에서 개인의 신앙윤리를 강조하는 개인 지향적 기독교 세계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주님 주권적 세계관. 이 모든 세계관 중에 가장 탁월하고 포괄적인 세계관은 마지막 주님 주권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주님 주권적 세계관이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속적이고도 힘 있게 표현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은 하나님을 향한 진지함과 함께 세상을 향한 포용력과 자신을 향한 겸손을 동시에 보여주는 세계관이다. 주님 주권적 세계관은 창조와 타락과 구속의 관점으로 역사와 우주를 해석한다. 사람들은 코비드 19을 통해 자신들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모든 영역에서 처절한 좌절을 맛보았다. 코비드 19은 인간의 한계와 함께 하나님의 주권이 어떠함을 너무나 잘 보게 해주었다. 그렇다. 팬더믹 이후의 세상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 수 없고 그런 것을 만들겠다고 헛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팬더믹으로 초토화된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은 정직히 하나님 주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절실히 요청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세계관을 포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팬더믹 이후에도 헛된 세계관을 붙잡고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민다. 지난 세기에 프란시스 쉐퍼에 의해 던져졌던 질문이 팬더믹 이후를 살아갈 우리에게도 또 다시 던져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말해 “우리는 과연 우리를 살릴 세계관을 든든히 붙잡을 지혜와 세상을 이끌 세계관을 힘 있게 외칠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08.0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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