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여자의 일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파상이 떠오른다. 아니 모파상의 소설 가운데 기구(崎嶇)했던 여인 “잔느”의 이야기 때문에 “여자의 일생”이란 단어가 더 각인되어 있다. 왜 모파상 소설뿐이겠는가. 가수 이미자씨의 “여자의 일생”이란 노래도 애잔하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이미자씨의 목소리에 녹아진 여자의 일생에 남자인 나의 마음에 왜 이리 먹먹할까. 소설과 노래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 주변에는 눈물 없이 또는 분노 없이 들을 수 없는 여인들이 이야기가 즐비하다.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계속 이름이 바뀌면서 흘리는 눈물의 주인공들, 그 이름 여자(女子)이다. 물론 가득 찬 눈물만이 아닌 또 다른 “여자의 일생”도 다양하게 있다.
지난 주간 한 “남자의 일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본보(本報)의 직전 발행인이기도 하였고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던 고(故) 장영춘 목사님의 일생이었다. 목사님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목사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또 필자가 20여 년을 넘게 가까이서 가르침도 받고 섬기기도 하였던 시간 속에서 목사님의 일생에 대한 정리를 해보았다. 대단하신 일생이었다. 아버지가 건네준 성경하나 들고 남하(南下)하여 힘든 피난생활을 보내시다가 교회의 관리집사로 평생 살게 해달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신학의 길로 인도하셨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교수를 하려 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미주 한인교회의 목회자로 세우셨다. 교회와 신문사, 신학교와 수많은 사역들을 힘겹게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넉넉히 감당하셨다. 그의 넉넉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듬뿍 이란 말과 같았다. 그는 때때로 쓰러진 적이 있어도 좌절을 몰랐다. 그에게 몰아치는 어려움이 있었어도 타협을 몰랐다. 비전도 선명했고 중심도 분명했다. 그는 “위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재현하는 교회가 되게 하자”는 비전을 세웠고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에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목사님의 일생을 꿰는 단어를 이번에 찾았다. 한 단어였다. 그를 만난 모든 자들이 쓰는 단어였다. 나는 지난 주 목양칼럼에서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 목양칼럼의 제목은 “사랑의 퍼즐”이었다. 이렇게 써 내려간 칼럼이었다. “퍼즐을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큰 퍼즐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드디어 퍼즐을 맞추었습니다. 목사님의 장례예배 가운데 목사님을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니 한 큰 인물의 퍼즐이 맞추어진 것입니다. 고(故) 장영춘 목사님에 대한 각 사람의 퍼즐을 모아보니 사람 숫자만큼 형형색색이었으나 주제는 하나였습니다. 모두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누구에게나 큰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입니다. 목사님의 생애는 사랑의 퍼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후일에 생명 그칠 날이 있을 터인데, 어떤 퍼즐을 남길 것인지 목사님도 추모하면서 스스로의 모습도 깊이 생각했을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고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공인생을 빚으려 살지 말고 사랑인생을 빚으며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임을 누구라도 깨달았을 지난 금요일 밤이었답니다.” 그렇다. 그 남자의 일생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이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셨고, 사람들도 뜨겁게 사랑하신 일생이었다.
04.2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