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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on!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13, 12, 11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며칠 전 장례식 집례를 위해 가는 길에 내 차 앞의 빨간 신호등을 보고 차가 멈춰 서 있었다. 차 안에 앉아서 잠시 왼편을 보니 보행자 신호등의 숫자가 그렇게 줄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그 숫자가 0으로 내려가고 신호등이 바뀌면 서둘러 얼마 남지 않은 장례식장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왼편에 보이는 보행자 신호등의 숫자가 더 줄고 있는 그 순간에 바로 그 신호등 옆에서 누군가 내 차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고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쳐도 되겠지만 황급히 차문을 내려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외침이 분명히 들렸다. “Light on!" 내 차의 light가 꺼져 있음을 보고 그 사람이 light를 켜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 보니 그동안 자동차의 light가 꺼진 줄도 모르고 달려왔고 또 그렇게 달릴 뻔하였던 것이다. 밤중에 달리는 차에 light가 꺼져 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사람의 외침을 알아들은 순간 앞의 신호등은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내 차는 꺼졌던 light를 켜고 달려 장례식장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빛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 보았는가. Black out, 필자가 사는 뉴욕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가 몇 번 있었다. 빛이 사라지면서 무법(無法)은 기승(氣勝)을 떨었다고 도시의 역사(歷史)는 말해주고 있고, 그럴 때 겪은 혼돈(混沌)을 직접 말하는 자도 있다. Black out 때는 모든 도로의 신호등도 작동하지 않아 차들과 사람이 뒤엉킨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청년 때 서울의 큰 네거리에서 차들과 사람이 서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신호등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통제할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네거리 가운데로 달려 나갔다. 손으로 차들을 멈추기도 하였고 가라고 사인(sign)을 주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내게로 달려와 호루라기를 건네주었다. 교통정리를 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혼돈은 사라졌고 걸어 지나는 사람들과 차 안의 사람들이 나의 기이(奇異) 행동에 적잖이 놀라했다. 얼마 후에 도착한 경찰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어린이 교통대”에서 경찰 아저씨들로부터 교통정리 하는 법을 배웠고 청량리 어느 네 거리에서 실습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그렇게 사용될 줄 몰랐던 초등학교 때의 훈련이었다. 아무튼 나는 잠시 혼돈의 거리에서 빛이 되었었다. 

일정량의 기름을 시(市)로부터 공급받아 등을 밝히던 등대가 있었다. 그 등대의 등대지기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등대의 기름을 조금씩 빼어 팔아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곤 하였다. 그런 일은 큰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등대의 남은 기름으로 칠흑 같은 밤바다를 아침이 될 때까지 잘 비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많은 어부를 태운 배가 풍랑이 심한 밤바다에서 이리저리 출렁이었는데 등대의 빛을 볼 수 없었고 항구를 찾지 못하다가 암초까지 만나 좌초되어 모두 죽게 되었다. 밤바다에 불이 꺼져 있는 등대는 더 이상 등대가 아니다. 등대지기가 아무리 이런저런 일을 살피더라도 등대를 밝히는 일에 실패하면 모든 일에 실패하는 것이다. 

교회는 산 위의 동네이다. 그냥 산 위의 동네는 아니다. 세상을 위한 빛을 밝히는 산 위의 동네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에 빛이 꺼져 있다면 그 교회는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면서 자신도 어려움에 빠지고 세상도 힘들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Light on!" 불을 켜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13, 12, 11.... 곧 0이 되기 전에 다시 불을 켜야 한다. 그대, 불이 켜져 있는가?

 

10/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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