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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사회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아무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식당가서 음식을 먹을 때 주방장을 의심하여 음식물을 조사하고 먹는 사람은 없다. 보스턴을 향하는 기차를 타고 “이 기차가 워싱턴으로 갈지 모르겠다”고 기관실 문을 두드리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얼마 전에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의사들의 조치와 말이 미덥지 못한다는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거나 이건 이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의시와 다른 주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이다. 이것이 허물어지면 가정도 교회도 일터도 나라도 엉망이 될 것이다. 

목회자나 성도가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이보다 참담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버지니아의 한 교회를 섬기던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 목사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누구인가? “래디칼”이라는 책으로 수많은 자들에게 참된 제자의 길을 제시해 왔고 그 자신도 부단히 참된 제자도를 추구하는 목사로 알려져왔다. 그런 그에게 지난 6월 2일 주일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 교회를 방문할 것인데 목사님이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란다는 소식을 갑작스레 듣게 된 것이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복 차림으로 나타났고 플랫 목사는 그를 회중들이 보는 강단 앞에 세우고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목사의 기도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나 그렇듯이 교회당 뒤에나 목사 사무실에서 기도하면 될 일을 굳이 강단 앞에 대통령을 불러 세워 기도했어야 했냐는 것이다. 모든 정치가가 그렇듯이 그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비호하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강력한 정책 때문에 힘든 사람이 있는데, 이런 기도의 형태는 플랫 목사가 모든 사람을 대하는데 공정한 모습이 아니었고 나아가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 같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플랫 목사님도 당황했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음을 그 다음날 밝혔다. 자신은 귄세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에 따라 기도를 했지만 그의 정책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함을 드러내는 글을 썼다. 

과연 플랫 목사님의 처음 선택은 잘못된 것이고 자신의 대통령을 위한 기도에 사과성 글을 쓰는 것은 진짜 용기 있는 일이었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을 갑자기 만났을 때 누구나 당황해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택과 행동 기준이 있겠지만 그것이 미처 작동하기 전에 급한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에도 변함없는 원칙을 보일 필요가 있지만 자칫하면 그만이 가지고 있는 원칙을 내 원칙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옳다 그르다의 목소리를 높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일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교회 안에도 서로에 대한 신뢰의 자리는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목사의 어떤 선택에 대한 의구심, 성도의 어떤 행동에 대한 의구심이 늘 잠복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판단보다 신뢰가 아름답다. 그 신뢰로 간혹 후회어린 눈물을 흘릴 일이 있다하여도 판단의 사회보다 신뢰의 사회가 에덴동산의 원형임이 분명하다.

 

06.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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