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최근에 몇날 방문했던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삼분의 일은 족히 되어 보였다. 지역 주변에 대학들이 몇몇 있었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바로 그 젊은이들이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넘어서까지 그들이 교회에 머물다 졸업과 함께 타 지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지역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또 새롭게 찾아온다고 한다. 그 교회 장년들과 청년들이 따로 또는 함께 예배드리는데, 함께 드리는 예배에 “찬양대”도 있었고 “경배와 찬양”팀도 있었다. 자신들의 색깔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적절한 조화가 그 가운데 흘렀다. 장년들에게는 그 젊은이들이 소중한 선교지였고, 젊은이들에겐 그 장년들이 인생의 가장 힘들 때에 신앙과 위로의 버팀목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졸업과 함께 그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이 자신의 일자리에서 반듯하게 하나님을 높이기를 힘쓴다는 이야기와 떠난지 5년 10년이 지나서도 계속 연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무는 동안 그 교회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형제가 배우자와 자녀들과 함께 다시 찾아온 진풍경도 보았고 또 다른 형제가 타 지역에서 일년 동안 직장생활해서 벌게 된 소득을 가지고 직접 찾아와 그 교회 음향시설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쉽지 않은 모습도 보았다. 마침 그 교회가 세워진 기념 감사예배도 있었는데 지역의 다양한 교단의 목사님들이 함께 오셔서 진정어린 축사의 말씀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게 되었다.
처음 불렀던 것은 아니지만 그곳 젊은이들 장년들과 함께 불렀던 찬송이 그날따라 매우 의미심장했다. 그 가사는 이렇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다시 오실 그날까지/우리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우리교회는 이 땅의 희망/교회를 교회되게 예밸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성령 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되게 예밸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져며 왔다. 그 가운데 “교회는 이 땅에 희망”이란 구절에는 더 큰 울림이 있었다.
그렇다. 교회라는 이미지가 요즘처럼 땅에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한 몇몇 교회의 모습이 교회의 진면목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함께 불렀던 찬송처럼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살펴보면 각 교회는 그 교회만이 독특한 이야기가 있고 주님 안에서 “농익은 멋과 맛”이 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교회가 진정한 주님의 교회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랑과 헌신과 희생을 쏟아왔는가.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 참된 예배가 되도록 얼마나 끝없는 눈물로 기도해왔는가. 교회만이 세상의 희망임을 알아 그 희망의 빛을 어둔 세상에 비취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절절히 태워왔는가.
교회 외에 하나님께 굴복하고 교회와 역사의 유일한 방향인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교회 외에 이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외치는 곳이 어디 있는가. 세상에 절망이 만연되어 있다. 매일 아침 어두움이 물러간 그 햇살 가운데 희망으로 힘차게 일어서는 자가 세상에 그 누구인가. 절망은 절망을 보듬을 수 없다. 희망이 절망을 치유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세상처럼 절망할 수 없다. 교회는 절망의 이 땅에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교회의 장년세대와 청년세대가 서로 존중해주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가 힘들 때 은혜 받은 교회를 잊지 않고, 지역 교회의 교역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진정어린 동역자들이 돠어 갈 때 교회는 ‘이 땅의 희망’이라 불리는데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05.0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