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15일 1641호 UPDATED 2017-07-18 오후 9:31:59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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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신앙인 특권 예배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적극적 반응
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예배



신앙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특권은 다름이 아닌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예배의 핵심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나누는 영적 교제에 있다. 죄로 인하여 닫혀졌던 그 길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새롭게 열렸다. 지상 교회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하듯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모인 자들 중에는 예배의 의미를 이해하고 누리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을 삼아 제정된 형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다. 십자가 복음을 통한 구원의 감격이 없이 드리는 예배에는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성도 사이의 유일한 연결 고리가 되시기 때문이다.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이 있었다면, 예배의 형식이었다. 10세기라는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굳어진 중세 교회는 자신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회중이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즉 미사가 그 중심에 있었다.
루터는 중세 교회의 미사를 몸소 경험하였다. 우리는 그가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들은 후 또는 성경을 묵상한 결과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피력한 것이다.

변화되는 예배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기로부터 약 5세기가 지난 현재, 우리는 로마가톨릭교회 미사와 개신교 교회의 예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예배의 순서는 물론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구분점이 있다.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루터는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신학교에서는 교수로 교회에서는 설교자의 사역에 충실히 임하였다. 한 도시에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교회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주일이 되면 두 교회 중 한 곳을 선정하여 출석하였다. 개혁이 확장되면서 각 도시마다 더 많은 개신교 교회가 세워지면서, 이런 현상은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적 마인드를 지닌 성도들이 교회 건물이 새롭게 지어서 구별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에, 매우 흥미로운 일이 생겨났다. 과연 로마교회 성당의 핵심인 성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중세 교회는 성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왔다. 하나님의 이미지를 담은 조각과 그림을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돕는다는 뜻으로 출발한 것이다. 나아가서 성인의 조각을 교회의 중심에 만들어 놓았다. 예수가 아닌 그들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 것이다.

루터의 동지였던 안드레아스 칼슈타트(Andreas Karlstadt)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인하여 비텐베르크 시에 소동이 일어났다. 그는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성경적 원칙에 근거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숭배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성상을 반드시 부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대변하는 가시적인 것을 제시하는 것은 그들의 지적이며 영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칼슈타트는 1522년에 작성한 “이미지의 폐기에 관하여”란 논문을 통해 다음 세 가지를 주장하였다. (1)교회에서 성상이 현존하는 것은 십계명에 위배되는 것이다. (2)조각이나 그림은 악마적이고 위험하다. (3)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성경이 부여한 적합한 일이다. 그는 중세 교회가 하나님과 예배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고 확신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자의 일반적인 고민이었다. 그 어느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을 인정하는 자체가 종교의 타락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터는 칼슈타트의 성상파괴론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 루터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였다. 그는 신학적으로 성상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만일 성상이 성도의 진정한 예배를 방해하고 도리어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일이라면 당연히 파괴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칼슈타트의 급진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나타냈다. 단순히 성경에 근거한 개혁을 시도하는 의미에서 성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킴으로서 로마가톨릭교회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폭력에 대하여 자제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성상에 대한 루터의 입장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다. 마치 그가 성상을 수용하였다는 뜻으로 그의 뜻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성상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고, 진정한 문제는 성상을 숭배하는 신자들이라고 지적한 내용을 두고 불편해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루터는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개신교 예배에 관하여 성상파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우상이 먼저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설교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1523년에 “회중 안의 거룩한 예배 질서론”이라는 논문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하여 예배에서의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세 교회의 라틴어 설교가 성도들의 예배를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꼬집었다. 사제들이나 성도들이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영적 유익도 기대할 수 없는 오류임을 지적한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소중한 행위로서, 반드시 성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다고 확신한 것이다. 칼슈타트와의 논쟁은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면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바벨론에서 구출된 예배



루터는 초기부터 중세 가톨릭교회의 미사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종교개혁 출발 3년 후인 1520년에 작성한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논문에 이미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중세 교회에 의하여 포로로 잡혔다는 극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비록 중세 교회의 건물은 눈부시게 화려하였고 매우 높은 수준의 음악을 구사하였지만, 미사에 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갔다는 뜻이다. 그는 이와 같이 초기부터 미사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는 구교의 성만찬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미사에 대한 기본 개념이 비성경적임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미사를 인간의 공로를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루터는 예배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개념이 결코 구약의 희생 제사와 동일시 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이다.
루터는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근거를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서 찾았다. 그가 갈보리에서 드린 희생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미 사죄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마치 자신이 또 다른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행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커다란 오류라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십자가 보혈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된다.

“만일 미사가 하나의 약속이라면 미사에 접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어떤 행위나 능력이나 공적으로가 아니고 신앙 만에 의해서 일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받아드리는 인간의 신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의 시작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는 신앙일 것이다”(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p.172).

만일 예배를 잘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루터에게 질문한다면, 그는 분명히 신앙인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깨달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나의 기준에 의하여 뜻과 정성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맞추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은혜로 받은 선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배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 인간의 노력과 선행을 바치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없이 주신 귀한 선물을 확인받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루터는 1523년에 “미사 형식서”를 출판하였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참여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는 중세 교회의 미사에서 중시하는 모든 외적인 화려함이나 미신적인 의식들을 과감하게 제거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목회자였다. 개혁정신을 받아들인 성도들이 새로운 신학에 근거한 예배에 서서히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무엇인가 획기적인 일을 시도하는 것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멀어질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온 회중이 수동적인 자세로 예배에 임하는 것보다, 기대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예배를 구상하였다. 예배자가 반드시 자국어로 예배를 드리도록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를 거부하여야 한다는 사실 이외에 예배 시간에 회중의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있다면 그가 도입한 회중찬송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예배의 개혁이 포함되었다. 그 중심에는 예배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적극적인 반응이란 가르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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