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15일 1641호 UPDATED 2017-11-07 오후 9:31:12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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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윤리학(The Ethics of Suffering)
이승현 박사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총장)


고난의 신학으로 시작한 욥기에 대한 묵상을 나는 고난의 윤리학으로 마치고자 한다. 어쩌면 고난의 신학이 있기 전에 고난의 윤리학이 앞서야 할지 모르겠다. 임마누엘 레비나스라는 유태인 철학자는 윤리학이야말로 모든 의미의 기원이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의 대학살이라는 참혹한 역사적 증언 앞에서 고난의 의미나 신정론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뜻이 없으며 오히려 무고하게 죽어간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고통을 왜곡하며 폄하하는 어리석은 노력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의 무의미가운데서 다른 이가 겪고 있는 무의미한 고통을 자신이 짊어지는 것만이 자신의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신학에도 옳은 신학과 그릇된 신학이 있는데 나는 이것의 기준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지 아니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인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회오리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바스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신다(42:7). 여기에서 “옳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세워지다, 변함없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 “믿고 의지할만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God Talk가 그릇되었다고 판단하신다. 나는 그 이유가 친구들의 God Talk가 고통 받는 욥에 대한 신의를 버린 책임감이 없는 신학이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본다(예로 19장 21-22절). 친구들은 욥의 고통을 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두려움에 싸여 “죄인”인 욥에 편에 서기보다는 그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고난은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고난(자신의 고난이던 남의 고난이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갈 의무가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친구들의 God Talk가 신학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하더라도 욥의 고난에 대한 책임을 진 신학이 아닌 오히려 욥에게 책임을 전가한 신학이라는 데에 그릇됨을 찾을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은 그들이 갖고 있는 거룩 또는 정결에 대한 신학을 통해서 얼마든지 설명하고 정당화 할 수 있지만 그 신학이 죽어가는 형제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이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게 하는 신학이라면 그 신학은 한계점에 도달한 신학으로서 개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정결에 대한 “올바른” 신학을 비록 알지 못할지라도 죽어가는 이웃에게 사랑과 온정을 베푸는, 책임을 지는 사마리아인의 삶이야말로 고난의 윤리학의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겠다.

고통과 아픔은 고통과 아픔을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또 그들만이 아픔과 어려움을 경험하는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전1:4). 욥기는 고통을 통해서 욥이 어떻게 당대의 의인에서 위로를 베푸는 자로 변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욥은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하고 자기 자신의 고난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하나님께 전가하거나 탓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무지에서 나왔음을 고백하고 회개한다(42:3).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욥에게 친구들이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올리라고 말씀하신다(42:8). 욥이 친구들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 고난 전에 드리는 욥의 제사는 자기 자녀들의 안전과 보호를 비는 기복적인 제사였다면 고난 후에 드리는 욥의 기도는 친구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비는 중보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욥의 기도를 통해서 그의 위신을 다시 세워주신다.
하나님께서 욥과 친구들로부터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져 옳은 이의 손을 올려주시기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욥의 말이 친구들의 말보다 옳다고 생각하셨을지라도 욥이 친구들을 정죄하기보다는 욥으로 하여금 그들을 용서하고 욥 자신이 회복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욥기에서 나타나는 고난의 “의미”는 임마누엘 레비나스의 말처럼 이웃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 아픔에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사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개념적인 고난의 이해가 고난을 이기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욥기는 남을 위한 삶이 회복의 시점이라고 말한다. 고난은 우리 육체의 삶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무한한 우리 자신을 위해 매일 매일 사는 삶에 소망과 의미가 없고 우리 자신을 버려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데 초점을 맞출 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욥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왜 욥이 고난을 당하였는지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또 친구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통해 욥을 회복시키신다. 욥기 42장 10절은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욥을 곤경(히브리어는 “포로”)으로부터 돌이키셨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회복이 욥 자신의 회복보다 앞선 것이다. 아프고 상처받은 이가 자신보다 더 건강한 이를 위해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를 통해 자기 자신이 회복되는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다. 고난의 윤리학이 고난의 신학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욥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욥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다시 되찾고 잃어버린 것들의 두배로 축복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회복이라는 결과에 중점을 두는 목적론적인(teleological) 윤리학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인내하고 참으면 고난의 결말이 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응보론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욥의 고난으로부터의 회복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리고 온전하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자녀들을 잃은 아픔이 또 다른 자녀를 얻는다고 해서 완전히 극복될 수 있을까? 회복의 길은 평생을 통해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자기와 같이 고통 받았던 그리고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걸어야하는 길이다. 욥의 삶 후반부 기록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은 그가 자신이 낳은 세 딸들에게도 아들들과 같이 유산을 남겨주었다는 대목이다. 아들들만 유산을 남겨주는 고대근동풍습에도 불구하고 딸들에게도 그 권리를 주기로 한 욥의 결정은 고통가운데서 멸시받고 따돌림 당함을 경험한 욥이 그 당시 무시 받던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연민을 갖게 됐다는 증거이다.

욥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예수님의 예표가 된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멜기세덱과 같은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에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중보자 역할을 하시는 그 분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고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 나의 책임으로 여기며 오늘도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끝>
james.lee@itsla.edu

  ny@ch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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