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15일 1641호 UPDATED 2017-11-07 오후 9:31:12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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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16세기 종교개혁



16세기 종교개혁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확산되도록 모든 환경이 조성되었다. 중세 말은 한 마디로 ‘변화’가 상식이 되었던 시대이다. 사회, 문화, 문학, 경제, 도시, 사상이 포함된 총체적인 변화는 사상의 변화에 기인하였다. 중세의 고정된 생각의 틀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기본적 변환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표면에 드러난 것들은 보다 근본적인 사상의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중세교회는 1000년 역사를 걸어오면서 바위보다 단단한 전통을 남겼다. 유럽의 중세 세속 역사와 교회의 역사는 거의 동일하다. 교회가 사회와 정치의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 말에 찾아온 사상의 변화로 인하여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던 교황과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성경의 지닌 권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있었다. 과연 교회가 성경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교회도 반드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아진 것이다.
중세 교회도 성경을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전통, 즉 성경의 자의적 해석도 성경 자체의 권위와 버금가는 것으로 여겼다. 종교개혁의 여명기에 활동했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0-1384)와 얀 후스(Jan Hus, 1372-1415)와 같이 목숨을 걸고 교회 개혁을 외친 선구자들은 “교회가 성경적이어야 한다”고 외쳤다. 교회의 전통이 아닌 성경이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의 위치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재발견과, 나아가서 성경과 교회의 전통 사이에 야기된 혼동을 결말짓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의 권위


종교개혁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속에서 시작되었고 진행되었다. 성경의 권위는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닌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지닌 원래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창조자 하나님이 창조물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음성을 기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회가 성경의 말씀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순종하면 된다.
확고한 성경관은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어떤 전통이라도 성경이 잣대가 되어 검증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녔던 중세 말 교회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 일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였다.
성경의 권위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동기였다. 우리는 그가 중세교회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에 젖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라났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교육받고 머물러 있는 신앙의 규범에 대한 비판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중세 말 유럽 사회에 다양한 변화의 물결이 범람하였어도, 감히 교회를 향하여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루터의 개혁이 성경에 입각하였다고 하는 의미는, 그가 교회의 전통과 성경의 권위 중에 후자를 선택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개혁은 성경이 말하고 가르치는 대로 행한 것이었다. 그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작은 불꽃과 같이 경미한 것이었지만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원인은 루터와 같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개혁은 루터 개인이 지녔던 독특한 사상이 아니라 중세 교회의 전통이 아닌 성경의 진리가 신학과 신앙의 유일한 규범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는 개혁 사상이 널리 퍼져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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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개혁



현재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쇄되어 팔리는 책이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평신도가 성경을 직접 만져보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성경은 교회의 전유물이었다. 성도는 미사를 드리는 시간에 사제가 읽어주는 성경 구절을 듣는 것이 성경을 접할 수 있던 전부였다. 성경읽기에 사용된 언어는 라틴어로서, 이 언어를 특별히 공부한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루터가 처음 성경의 권위를 경험한 것은 그가 에르후르트(Erfurt)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20살 때였다. 그는 그 곳에서 개혁적 마인드를 지닌 교수들을 통해서 신앙 교훈을 받을 수 있었다. 고전, 논리, 변증학 등의 과목을 통해 학문에 대한 눈을 뜨면서 공부에 전념하였다.

어느 날 도서관을 방문하여 직접 성경을 대하게 되었다. 잠시 사무엘상을 펴고 한나가 사무엘을 헌신하는 대목을 읽은 후, 성경에 매료가 되었고 자신도 한 권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성경을 읽은 후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양심에 찔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잠시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강하게 역사한 것이다.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 후 그는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20세 청년 마음을 강타했던 하나님의 말씀의 호령은 시간이 지난 성경에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을 갖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사실상 교회개혁이었다. 그는 중세 1000년 동안 초대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변형된 로마가톨릭교회를 향해 성경이 말하는 교회로 되돌아 가야한다고 힘있게 외쳤다. 그러나 더욱 엄격한 의미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신앙개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세 교회가 저지른 가장 커다란 영적 범죄는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적 교리와 규범, 그리고 예식에 충실하려 하였다는 것이라 확신하였다. 가장 좋은 예가 있었다면, 바로 루터 자신의 신앙 상태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경에 근거하였다는 것과 동일하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그가 주도했던 종교개혁은 매우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가 교회의 전통에 속박되어 있는 성경을 신학과 삶의 규범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게 하는 일에 앞장섰던 것은 개혁을 주도한다는 사명감 또는 영웅의식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으려 했고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즉,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개혁적 행동의 동기이며 내용이었다. 그 말씀은 먼저 자신의 신앙을 개혁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나아가서 개혁을 위한 그의 활동의 중심에는 항상 말씀이 있었다.



성경과 성령



루터는 자신이 일 년에 두 번씩 성경을 통독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성경이 지닌 능력을 깊이 깨달았고,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유익을 누렸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의 이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당시, 성경은 무엇인가 어둡고 분명하지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하여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간 후,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의 영특함과 아울러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진지한 모습을 발견한 요한 스타우피츠(Johann von Staupiz) 라는 좋은 스승이자 후원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루터가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면 평상시 마음에 지니고 있던 신앙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할 것을 권유하였고 그 당시 독일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던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546-1525)의 보조를 받아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1512년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나아가서 스타우피츠는 루터에게 자신의 후임으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치는 일을 맡겼다. 루터에게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없었다. 매일 성경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고, 설교하는 시간이 연속되면서, 결국 그가 마음에 품었던 개인 신앙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선명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1513년 시편 주해 강의를 시작으로 신앙의 안정을 찾더니, 결국 1515년 로마서 주해 강의를 시작한 후 성경에 제시된 복음을 통하여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탑실 체험'이라 부르는 이 사건의 특징은 그의 근본적 신앙개혁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오직 성경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바탕에는 '오직 성경'이란 불변의 사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경에 관한 루터의 공헌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도들이 모국어로 편안하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분명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이 종교개혁의 불을 크게 지피는 일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관심을 쏟아야 할 사항은 루터가 그토록 집요하게 성경을 번역한 분명한 이유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루터는 어거스틴의 성경관을 자신의 성경해석의 근간으로 삼았다. 성경을 대하는 자의 마음에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그 내용이 분명하고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말씀이 선포될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을 친히 우리 마음에 하시기 때문이다.
1519년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있었던 요한 에크(Johann Eck)와의 논쟁에서 중세 교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 '오직 성경' 사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로 인해 루터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루터는 종교개혁이 서구 역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란 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신앙적 고민과 성경적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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