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6월10일 1637호 UPDATED 2017-06-08 오후 4:58:32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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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일 맡은 자는 믿음과 순종 겸비...맡긴 분이 누군지 알아야
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직분



하나님의 일을 바로 감당하기 위하여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소명과 사명이다.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정하시고 일을 맡을 사람을 부르신다. 과연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자명하게 가르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일을 맡기는 자는 믿음과 순종을 겸비한 사람이다. 맡은 자에게 충성을 요구하시기에 사명에 불타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일을 맡기신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직분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직이라 하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말한다. 이 중에 성경에 명시되어있지 않은 직분은 권사이다. 한국에 파송된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지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미국 본부의 허락을 받아 도입되어, 아직도 한국 교회에만 있는 직분이다. 이와 달리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는 성경에 그 역할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꿈꾸고 있던 시기의 중세 가톨릭교회는 사제를 중심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장로 또는 집사의 역할은 물론, 평신도의 역할이 축소되어 있었다. 루터는 교회를 떠나지 않은 채 성경에 근거한 모습을 이루기 위하여 개혁을 시도하였기에, 당연히 중세 교회의 직분론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는 중세 교회의 속한 사제로서, 그 누구보다 가톨릭의 사제주의와 교권주의의 오류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사제와 평신도라는 이중적 구도의 전통 속에서, 거의 소멸되어버린 평신도의 역할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한 직분을 받지 않아도, 성도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만인제사장에 대한 오해



로마가톨릭교회는 루터를 위협하며 목숨을 제거하려하였다. 면죄부를 포함한 신학적으로 다른 의견을 피력한 이유도 해당 상황이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설’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의 교회 개혁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교회에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을 두는 것이 심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가장 예민한 부분은 누가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격자냐는 것이다. 이들은 ‘만인제사장’에 근거하여 평신도들도 목사와 같이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회 직분론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루터가 분명 평신도들을 마음에 두고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저술한 “교회의 사역자를 세우는 일에 관하여”라는 논문에 이 개념에 대하여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1523년의 일이었다. 이 전에 저술된 논문에도 직, 간접으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피력하였다. 이와 같이 루터는 종교개혁을 주도해 나가면서 여러 영역에서 ‘만인제사장설’을 분명히 드러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1530년 이후 루터는 목사와 감독의 직분에 대하여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였다. 그가 교회를 위한 직분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설교를 맡은 목사를, 신분은 그렇지 않은 평신도와 구분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질문이 생긴다. 루터가 종교개혁 초기에는 목사와 평신도의 독특성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후에는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은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것이다. 루터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다. 단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는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지적한 사항은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목사나 평신도나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만인제사장에 대한 사실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종교개혁이란 커다란 그림 안에서의 변화를 마음에 두어야 한다.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언급하며 염두에 두었던 것은 성직자 중심의 로마가톨릭교회의 모습이었다. 예배 제도가 형식화되어, 평신도들의 영적 생활이 핍절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간파한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성도들이 라틴어 성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이를 전하는 사제들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더듬거리며 읽어 내려가던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것이다.


루터는 베드로전서 2장 9절과 요한계시록 5장 10절에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기록된 것을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도들이 왕이요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런 신분을 지니셨다는 것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다. 인간이 직접 하나님께 갈 수 없었던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가는 통로와 같았다.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 변했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루터는 일찍이 로마서 주석을 하면서, 5장 2절에 이 사실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며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다.
중세 시대 교회는 성도들이 직접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금하였다. 그 중에 ‘고해성사’가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죄를 지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로 회개할 수 없었다. 반드시 자신의 죄를 사제를 찾아 고백함으로서, 사함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루터는 중세 교회의 타락을 단순히 도덕적인 것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가장 커다란 타락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평신도와 구분되는 사제의 역할이 비성경적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는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중세 교회의 전통과 달리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만민제사장설’을 언급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의 ‘만민제사장설’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제대로 설명하기 위하여, ‘보편제사장설’ 또는 ‘일반제사장설’로 변경하여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제사장 성도의 삶



이제 우리는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은 중세 교회가 사제들만이 제사장임을 강조하였던 것을 배격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루터는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의미에 국한하여 ‘만인제사장론’을 전개하였을까? 아니다. 루터는 성도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제사장답게 살기를 기대하였다.
루터에게 제사장다운 성도의 삶이란,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루터의 ‘만인제사장’은 매우 실천적인 것이었다. 그는 교회 직분론을 설명하면서 이 사상을 정리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 지녀야 할 의무를 지적하면서, 삶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 원했던 것이다.


성도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1523년에 저술한 “교회 사역에 관하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신약에서 제사장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 모든 기독교인은 철저히 제사장이고, 모든 제사장은 그 자체로 기독교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사제가 평신도와 무엇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루터는 세례를 통하여 영적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를 믿는 분명한 믿음이 있는 성도는 제사장이 된 것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루터의 관심을 이런 신분의 변화에 버금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 세상의 세속과 싸우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성도들도 자신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 구별된 삶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루터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완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이 요구가 완전하게 해결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셨으니,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선포하며 살아야 한다. 행동과 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다.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필자를 포함하여 일부가 거부할 수밖에 없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목사가 아닌 평신도들도 세례를 베풀고 성찬 집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필자는 루터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고 소개할 뿐이다. 그의 주장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정도로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루터가 처했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왜 그가 그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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