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15일 1641호 UPDATED 2017-10-10 오후 12:25:16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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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에제르가 되다
청교도의 가정생활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들어가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정에서마저 파탄이 일어나 교회의 덕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도 비성경적인 이혼과 재혼이 거듭되고 있으며, 성에 대한 개방풍조가 만연되며 십대의 미혼모들이 증가하며, 동성애가 법의 비호아래 가정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전면에 등장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형편이며, 청소년들은 폭력과 마약 흡입의 독소들의 영향을 받아 그것이 기독교 청소년들에게까지 전염되어, 기독교 가정의 신앙 모습과 정체성마저 흔들어대고 있다.
이렇게 믿음과 행위의 불일치, 건전한 윤리의 부재, 탈 법주의적 사고와 행동의 확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시대의 조류 등, 이러한 다원주의를 살아가는 시대에 우리들이 청교도들의 가정에 대한 견해와 삶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성경적 실천과 적용의 구체적인 장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기독교인 가정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삶 속에서 모든 활동과 관계를 더욱 거룩하게 가꾸어가는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생활을 통해 이루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교도들의 견고한 성경중심의 사고방식이 그들의 가정생활에서도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확고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우리가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청교도 가정의 삶도 역시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데 까지 서야한다는 개혁주의자 칼빈의 모토가 재현되는 가정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의 가정생활에 중심이 되는 예배생활, 기도생활, 경건생활은 청교도의 초기 영국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장이었다면 가정생활에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겠다. 가장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은 성경 특별히 신약성경 자체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그 전형과 모델의 원판을 찾기 위해 성경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1. 성경에서 언급되는 가정



성경은 가정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큰 가정인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에 비하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가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바울이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가정에 대해 네 구절로 간단히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3:18),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3:19),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3:20),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3:21). 에베소서에서도 비슷한 진술을 하고 있다(5:22-6:4).
왜 신약 성경에는 가정에 대한 진술이 적을까? 창조 때부터 세상의 많은 문제점들이 가정에서 근원이 되었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몰두하지 않으셨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대해 깊이 언급하고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가정보다 교회를 우선해서 진술한 그 자체만을 가지고 가정에 대하여 소홀히 다루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신약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가정은 거의 교회와 유사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개개인의 가정은 신약의 지상 교회 자체였기 때문이다(고전16:15).
특히 유대교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하고 박해를 가하기 시작한 후로,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서로 만나는 근본적인 장소가 되었다. 시약의 서신에 등장하는 많은 이름과 장소는 가정을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처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에서 가정교회에 관한 많은 자료를 발견할 수 있다(롬16:3-5, 고전16:19, 골4:15, 몬2). 이렇게 유추해 볼 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중요한 결론은 교회에 관한 기록은 곧 가정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대부분은 개인 가정 단위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 단위에 대한 훌륭한 지침서를 갖고 있는 셈이다. 교회는 가정을 감싸고 있는 우산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가정은 교회의 축소형이 된다. 이것이 또한 청교도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성경적인 가정의 의미를 회복하였던 청교도의 가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청교도 신앙”과 알렌 카든의 “청교도 정신”, 패커의 “청교도 사상”, 서창원의 “청교도 신학과 신앙”, 오덕교의 “청교도와 교회 개혁”, 원종천의 “칼빈과 청교도 영성”, 조엘 비키의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등의 책의 도움을 힘입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2. 청교도에 있어서 가정을 이루는 목적



청교도들은 가정이 왜 이루어져야 할까하는 것에 대한 목적이 분명했다.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청교도들은 가정이 올바로 세워지면 사회와 국가도 올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성경적인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가정의 구성과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마다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시대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초기 청교도와 동시대의 일반적인 사회상황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성경의 정공을 위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와 씨름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마틴 루터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요즘 사람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서로가 안보면 못살겠다는 듯이 서로가 결혼을 한다. 그러나 반년도 못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망치고 이혼한다. 심지어 아이를 다섯이나 여섯이나 낳은 후에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할 수 없이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몸은 함께 있을지 모르나 마음은 이미 떠나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부터 500년이나 되는 청교도 초기 시대의 사회상이다. 많은 가치와 사상들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가정에 대한 모습과 이해와 문제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성경의 빛과 인도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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