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2월24일 1671호 UPDATED 2018-04-01 오후 3:26:09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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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마음대로 하는 죄인, 제한된 믿음
- 갈수 있다고 다 길인가?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가난을 자초하는 신앙



기도할 때 ‘주님 저는 종입니다’라고 하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종이라고 그냥 뱉으면 안된다. 입으로만 ‘나는 종입니다’가 아니라, 종이라고 한다면 내가 섬기는 주인이 있다는 뜻이고, 그 분의 밑에서 그 분이 말씀하시면 나는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이 나온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목자가 되시려면 내가 양이 되는 것이 우선이며 기본이다. 내가 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는 사실을 믿고 하는 것이지 그것 없이 어떻게 양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주인 되신 예수님, 왕 되신 주님이 분명히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계시느냐, 아니냐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사람들은 만세 전에 택하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천하 만민 모두가 택한 백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어떻게 믿었길 래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아전인수격이다. 말이 안된다. 하나님을 있다 없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 신앙관이 있다는 게 참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나의 주인, 나의 주님이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것인가?
인생에서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고 개성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행패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자신을 망치는 못된 습성의 마음이다. 자신의 생각에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는 것은 스스로 가난을 자초하는 신앙이다. 내가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면 나의 생각을 넘어서서 은혜 베풀어 주시는 것이 믿음의 세계이다. 결코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개별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주인의 기쁨 종의 기쁨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할렐루야 아멘’을 외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주님이 잘 되시는 거라면, 그냥 무조건 좋아하고 감사하고 무조건 영광을 돌리게 된다. 내가 섬기는 분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기쁜 것이다. 내가 섬기는 그 분의 일이 아름답게 드러나기에 그를 따르는 나는 박수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움을 주장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잘 되는 꼴을 못 봐주는 것 같다. 이른바 개혁이라는 이름의 악한 내부자가 쉽게 등장하는 것이다. 바른 것을 말하는 것이 꼭 비판자의 모습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할 대상들에 대해 날선 정죄와 판단의 칼을 먼저 들이댐을 본다.
교회 뿐 아니라 자기가 섬기는 목사님이 잘 되는 꼴을 못 본다. 이해하고 신뢰할만한 일들도 자신이 가진 믿음의 잣대로 판단한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가? 섬기는 교회가 잘 되는데 왜 그걸 쌍수 들고 반대하고 욕하고 덤비는가? 그래서 결국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는 내부의 성장통(?)으로 인해 끝없는 고난의 시즌을 지나게 된다. 잘 될 때, 조금 더 마음을 합할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빚어질 텐데, 늘 내부의 문제가 주의 몸 된 교회와 주의 종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목사는 무조건 성도들 앞에 불쌍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럴 때, 교인들이 힘들게 하거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의 종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불가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도시에 한인교회가 18개가 있는 지역이 있다. 한인 인구가 2000명밖에 없는데 그렇게 여러 교회가 생겼다. 분열하고 분열해서 그래서 20-30명씩 모이는 교회가 18개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부흥을 말하지만 교회가 부흥해서 분립하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그곳의 특징을 들어보면, 목회자를 싫어하고 어쨌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다 주인이다. 서로 주님 안에서 다 종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을 섬기는 자세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헐뜯고 욕하고 잡아 내릴까 이런 모습으로 나아간 결과물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회복의 과정을 지나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다니는 학교를 똥통(?)학교처럼 생각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비천하게 생각한다면, 결국 학생으로서의 그 삶도 별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 무슨 열정이 있을 것인가?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꼴 보기 싫으면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선생이 가르치는 것보다 과외교사한테 배워서 난 성적이 좋아진다, 이러고 덤비면 어떻게 방해할 길이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엔 주인과 종의 사상이 철저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복 되게 하시려고, 종과 주인의 사상으로 하나님께서는 신앙을 설명하고 계신다.



한결같은 마음, 충성



성경에 달란트 비유와 다른 강조점을 가진 므나 비유가 있다. 주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면서 종 열을 부르고, 열므나를 가지고 열 명의 종을 불러 한 므나씩을 주면서 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한 므나는 한 달란트의 1/60 밖에 안되는 적은 자본금이다. 그런데 주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면서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고 말한 것이다. 각기 다르게 준 달란트와 무엇이 다른가?
누구도 차이를 주지 않고 한 므나를 주었다고 하니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바로 구원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똑같이 구원에 이르게 했다는 그 의미로 이 부분을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빈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그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므나를 받은 자 중에 어떤 사람은 열 므나를 만들어 냈고, 어떤 사람은 그걸 갖고 다섯 므나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수건에 쌓아 두었다고 말씀해주고 있다.
세상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많이 버는 자가 충성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그 말씀에 의지해서 끝까지 주인에게 순종해서 주인을 믿고 행했다는 것이다. 주인이 없는데도 똑같이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이 없음에도 한결같이 충성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주인이 없을 때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 선생님이 없을 때 우린 얼마든지 죄 짓고 딴 생각을 갖을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이 보이지도 않고 멀리 갔음에도 한결같이 충성한 것은 분명한 믿음의 증거이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복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과연 가는 게 길인가?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죄의 방향이 된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길도 차선이라는 게 있어서 안전하게 다니지 자기 마음대로 다니면 모든 것이 죄가 된다.
처음 인도에 갔을 때 내려서 가는데 차가 정면에서 온다. 분명히 차선이 있는데 차가 정면으로 오니 놀랄 수밖에 없는데 선교사님이 ‘목사님 여긴 가는 게 길입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찌 가는 것이 다 길이 될 수 있겠는가?
어렸을 때 한국도 그랬다. 깨우치는 과정이 없을 때, 눈으로 보라고 글을 써서 붙여두었다. 사람은 왼편, 차는 오른편, 이걸 외치고 외우고 그러고 살았다. 그러니 인도를 우습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법은 방향을 알려주기에 좋은 것이다.
만약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정에 법이 없다면 아버지를 때려죽일지도 모른다. 아버진 힘도 없고 뼈만 남은 아버지 칠 수 있지만 법이 무서워서 못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법철학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고 인정하라



참 성도는 늘 주님을 의식하고 인정하는 존재이다. 나에게 영적인 지도자가 누구인지 분별하면서, 방향을 제대로 보고 가는 존재이다. 한결같이 의식한다. 그래서 어딜 가도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렇다. 목사님 때문에 그렇다. 교회 때문에 그렇다. 기도해주셔서 그렇다. 이렇게 자꾸 주인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결코 가난할 수 없는 복된 성도의 모습이다.
특별히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입으로 시인하는 만큼 점점 악은 없어지고, 점점 복을 얻게 된다. 자꾸 주인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제가 교회 다니니까, 목사님이 기도해주셔서, 장로님이 기도해주셔서, 그렇게 자꾸 얘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은 자기가 다 끌고 다니는 것처럼 교만해지거나, 아니면 안되는 건 다 주님 탓, 교회 탓하고, 나는 기도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상한 소리만 떠들게 된다.
주님은 길, 진리, 생명이시다. 세상의 빛이시다. 그분이 우리 인생의 방향키가 되신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식하고 인정하고 순종함이 최고의 복이 된다. 사람이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간다고 어찌 모두 길이 될 것인가? 인생의 복된 길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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