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15일 1641호 UPDATED 2017-11-07 오후 9:31:12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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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에제르가 되다
루터의 목회적 관심, 종교개혁 물꼬 트다!
9Marks, 밥 켈먼 박사의 개혁자이자 목회상담가로서 종교개혁 일으킨 루터 소개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을 한 번에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루터가 태어나고 잠든 곳, 아이슬레벤(Eisleben)이다. 아이슬레벤 중앙 광장에 서 있는 루터의 동상은 여타 도시와 다른 포즈다. 대부분 도시의 루터 동상이 왼손에 자신이 번역한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반해, 아이슬레벤의 동상은 오른손에 레오 10세 교황이 보낸 파문 칙서를 구겨서 들고 있다. 레오 10세 교황은 애당초 루터가 '95개 논제'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사태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루터는 술 취한 독일인이다. 술 깨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터가 치켜든 횃불은 확산됐고, 교황은 말을 바꿨다. "주님의 포도밭에 뛰어든 멧돼지다." 교황의 표현처럼 루터는 불의에 저항하는 항거자(Protestant)같이 저돌적으로 번역하고, 저술하고, 설교했다. 마침 보급되던 금속활자 인쇄술은 종교개혁의 날개가 됐다. 1500년부터 1540년까지 독일에서 나온 책의 3분의 1이 루터의 저서였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설교는 루터의 또 다른 무기였다. 그가 평생 한 설교 중 현재까지 남은 것은 2300편에 이르며, 특히 1528년에는 145일 동안 195번 설교한 기록도 있다. “교황이 누군가를 연옥에서 구출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면 모조리 다 꺼내고 연옥을 폐쇄하는 것이 사랑의 도리 아닌가? 돈을 받고 숱한 사람을 구원한다는데 거룩한 사랑으로 그곳을 텅 비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마 교황을 정면으로 공박한 루터의 '논제'는 독일인들에게 큰 화제를 뿌렸다. 그렇다면 루터가 이처럼 사력을 다해 당시 절대적 지배자였던 교황에게 절대적으로 항거하면서 잠든 유럽을 깬 이유는 무엇일까? 밥 켈먼 박사(Dr. Bob Kellemen)는 루터의 항거이자 논박은 다름 아닌 “목회적 차원”에서 발동된 목회자이자 목자로서 자신의 양떼를 거짓된 진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고 해석한다(Martin Luther: Reformer of Pastoral Counseling). 아울러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 산하 온라인 매거진 ‘9Marks(www.9marks.org)’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밥 캘먼 박사처럼 목회적 차원과 연결해, 목회자들에게 종교개혁자들이 어떻게 잠든 유럽을 깨우게 됐는가를 특집(The Reformation and Your Church : Fall 2017)으로 보도한다. 따라서 10월 한 달 동안, 그 중 엄선된 기고문들을 발췌, 번역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자 한다. ▲10/7: Martin Luther: Reformer of Pastoral Counseling, Dr. Bob Kellemen ▲10/14: The Bible Translation That Rocked the World: Luther's Bible introduced mass media, unified a nation, and set the standard for future translations, HENRY ZECHER Christian History ▲10/21: The Reformation’s Restoration of the Sacraments, Bobby Jamieson ▲10/28: Four Ways the Reformation Changed Church History, Alex Duke]

1517년 10월 31일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독일 북부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붙였다. 권위와 인습에 사로잡힌 중세에서 벗어나 서구의 근대를 여는 첫걸음이었다.

같은 날, 그는 마인대교구 추기경에게 자신이 왜 이처럼 무모한 항거를 벌이게 됐는지에 대한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 서두에는 자신의 양떼들이 겪고 있는 영적 혼란에 대한 경고 즉 도미니칸 수도사 존 테첼의 화려한 언변을 업고 판매되는 면죄부의 부당성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루터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엄청난 오해에 빠져있습니다. 저 불쌍한 영혼들은 면죄부를 살 때, 자신들이 구원된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루터는 그리고 추기경에게 “이러한 영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에, 저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목회자이자 목자로서 개혁자로 나선 이유는 분명하게 밝혔다. 역사학자 맥네일(John T. McNeil)은 “독일 종교개혁에는 영혼들의 치유에 대한 관심이 그 시작부터 있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스프로울(R. C Sproul) 역시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내건 이유는 바로 “목회적 관심”에서부터 기인됐다고 간단명료하게 해석한다. 역사학자 타페르트(Theodore G. Tappert)는 좀 더 자세하게 이 점을 설명해준다: “마틴 루터는 일반적으로 교황권을 부정하고 잠든 유럽을 깨우며 교회의 구조, 예배, 교육에 개혁을 일으켜 지금까지 서구 문명에 영향을 준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엇보다도 영혼들의 목자이자 목회자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따라서 독일 종교개혁의 단초는 다름 아닌 루터가 관장하는 교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면죄부를 사면 자신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기 위한 목자의 각성과 진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루터가 이처럼 자신의 양떼들의 느끼는 영적 혼란과 두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루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에 대해서 의심하게 하는 사탄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치렀기 때문이다.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그는 기도문도 열심히 암송했고, 자기 몸에서 귀신들을 축출하려는 소망으로 금식도 했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으며, 불을 지피지 않은 방의 추위도 견뎌냈다.

그는 매일 정절, 청빈, 순종, 금식, 철야, 그리고 금욕적 극기까지도 하면서 인간 스스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갖은 노력과 애를 썼다. 그의 몸이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행이 쌓여가는 증거인 것처럼 생각했다. 만약에 수도사 훈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루터는 틀림없이 천국에 갈 정도로 엄격한 수련을 쌓았다. 그는 여러 수도사들 중 가장 열심 있는 수도사였다. 이처럼 루터는 자신이 구원 받는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고행이라도 실천했다. 루터가 그처럼 몸부림치며 자신의 죄를 보상해 보려고 했지만 이 모든 수고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리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인간의 구원문제에 대해 심한 갈등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루터는 수도원의 엄격한 계율 속에서 기도와 찬송, 말씀묵상, 그리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루터의 영혼에 대한 고뇌는 수도원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몸부림은 더욱 심했다. 그는 불의했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를 요구하셨다. “나는 흠 없는 수도사로 살아왔지만, 나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기도나 공덕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며 루터는 자신처럼 은혜로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바로 면죄부로나마 구원에 이루려는 양떼들의 혼란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루터는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즉 죄인인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루터는 하나님의 진노는 알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했다. 루터의 자서전 작가인 오베르만(H. Oberman)은 따라서, 루터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갈망이 그를 성경적 신학자이자, 동시에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목회자로서 나아가게 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우리가 평가하는 신학자이자 개혁자로서의 루터보다는, 루터는 항상 자신을 설교 즉 강단에서의 말씀 사역을 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으로서 영혼을 돌보는 상담자로서 여겼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갈라디아서를 신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루터는 목회자의 소명을 분명하게 밝혔다: “만약 내가 말씀 사역자라면, 나는 설교하며, 상심한 자들을 위로하며, 그리고 성례전을 집행한다.” 루터는 절대로 설교와 상담을 분리하지 않았다. 둘 다 복음 중심이며 말씀에 기반한 사역들이었기 때문이다. 1528년 8월 15일, 스펭글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루터는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성례전을 시작하면서, 루터는 하나님의 목회자의 역할과 소명을 말해준다: “성례전과 마찬가지로, 성도의 요구와 필요가 있을 때, 목회자는 설교해야하며, 위로해야 하며, 가난한 자를 도와줘야 하며, 그리고 병든 자를 심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루터에 있어서 성경만으로서 완전함은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승리와 동등하다. 그는 성경과 상담을 바로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 보았다. 따라서 은혜 안에서 크리스천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말씀 즉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복음을 날마다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이러한 믿음을 연습하고 확장시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크리스천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는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은혜가 바로 상담을 펼치는데 있어 충분한 근거가 된다. 루터에게 있어, 상담의 목적은 “금식, 순례, 수도사가 되는 것, 선한 행위, 성례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신앙을 갖게 하고 신앙을 통해 솟아나는 사랑을 연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결국 힘든 영혼에 대한 사역은 복음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결론으로, 목회자이자 목자의 마음을 가진 루터는 회중들이 겪는 영적 혼란을 바로잡고 치유하기 위해 결연하게 종교개혁의 최전선에 나서게 된다. 교회는 항상 상처 입은 영혼들과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돌보는데 힘써 왔다. 루터는 목회적 상담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개혁했다. 자신의 양떼들이 겪는 일상에서의 상처와 영적 갈등들을 복음으로 보듬어 안고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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