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F, ’Forget, Forgive‘

2F, ’Forget, Forgive‘

“실증주의 신앙”에 필이 꽂힙니다. 아무리 겉으로 튼튼하게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열매가 없으면 병든 나무이고, 겉으로 비실비실 보여도 열매가 탐스럽게 열리면 건강한 나무입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압니다(마12:33). 믿음도 보입니다. 입으로만 믿는 예수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예수가 나타나고 보여지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서, 순간마다의 결단 속에서 우리들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마5:16)을 말합니다. 그 믿음의 길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롬12:1)요 그 길을 가는 자가 ’영적 예배자‘입니다. 그 길을 살다 가신 한분이 떠오릅니다. 

'E.T.할아버지'로 알려진 채규철(1937-2006)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였습니다. 함경도 함흥에서 농촌목회를 하시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6․25 때 혼자 서울로 내려와 길거리나 천막교회 한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며 서울시립농업대(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 덴마크로 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당시 장기려 박사와 함께 일종의 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조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68년 어느 날 그는 뜻밖의 큰 자동차 사고로 온몸은 불에 타 숯검정처럼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끈질겼습니다. 30차례가 넘는 성형수술로 머리칼로 눈썹을 심고, 어깨 살갗을 떼어 눈꺼풀을 만들고, 입술은 가슴살로 되살렸고, 오른쪽 눈엔 의안을 넣었습니다. 손은 갈고리처럼 휘어져 손가락까지 오그라들었습니다. 오른쪽 눈은 끔뻑이질 않는 의안이며 왼쪽 눈은 살에 반쯤 파묻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모진 고통에도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청십자운동‘에 가담하여 1982년까지 ’서울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의 책임을 맡아 열정적으로 일했으며, 1970년에는 간질환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장미회'를 창립했습니다. 이어 1975년에는 “사랑의장기기증본부“를 창립해 돌아가실 때까지 헌신하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모세 채규철'로 불렀고, 철없는 아이들은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따라다녔습니다. ’ET‘는 ’외계인 같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미 타버린 사람‘의 준말이기도 했습니다. “농촌계몽운동”에서 비롯된 그의 교육사업은 1986년 경기도 가평에 설립한 '두밀리 자연학교'로 연결됐습니다. '어린이가 바로 세상'이라는 철학을 이곳에서 실천했습니다. 평생을 ’계몽과 교육, 봉사사업‘에 헌신한 성공회 신자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 'F'가 두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 거야"(조선일보 관련기사 참조).

비록 외모가 흉측할지라도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의미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이기에 그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의 길을 열정으로 걸어갔기에 오늘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평생을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사셨던 큰 어른이셨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대선 후 청와대 이전 문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실무자들을 시작으로 외연이 점점 국민들까지 확장되어 양극화되어갑니다. 정권교체기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긴 하지만, 한국 사회와 국민들을 ’진보와 개혁과 보수‘라는 플레임을 씌워 갈라놓는 정도가 갈수록 심하고 더욱 악화되어가 많은 우려를 낳습니다. 이제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는 ’국민통합‘이 되었습니다. 이때를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기준은 특정인도, 특정정당도 아닙니다. 단연코 오직 하나 ’하나님, 그분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사단은 갈라놓는 ’분열의 영‘이고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엡4:3)” ’평화의 사도, 성령의 일꾼‘으로 사단의 영을 물리쳐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 사명과 역할이 더욱더 중요한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E.T.할아버지'로 알려진 채규철 어른이 남기신 2F, “Forget, Forgive”를 이번 사순절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우리들 모두 각자의 삶의 현장에 십자가를 세우고, 말씀 앞에서 잊을 거 잊고, 지울 거 지우고, 내려놓을 거 내려놓고, 용서할 거 용서하고,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과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의 국민 대통합을 위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오늘의 ’ET‘, ’작은 예수‘, ’걸어 다니는 교회‘, ’하나님 찾으시는 영적 예배자인 그 한사람‘이 바로 우리들이기를 소망해봅니다. 

pastor.eun@gmail.com

04.0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