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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 계속 잡으세요”

여승훈 목사

자동차의 핸들을 앞으로 향해서 방향을 바르게 잡고 시동을 걸고 손으로 핸들을 잡지 않은 채 출발을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분명히 출발 전에 핸들 방향을 바로 잡아 놓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앞을 향해서 곧바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는 자동차가 달리면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비록 출발할 때 핸들 방향을 바로 잡아 놓았어도 자동차가 달리면 핸들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회심할 때 의지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게 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의지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은 바로 잡혔는데 삶의 현장은 계속 하나님을 향한 방향에서 비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의지 속에 활동하고 있는 ‘죄’ 때문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의지 속에는 하나님을 거슬리는 반역적인 요소가 여전히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있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슬린다(갈라디아서 5:17)고 말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슬리는 육체의 소욕의 중심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의지’입니다. 

한마디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는 ‘불완전한 의지’입니다. 마치 나무의 잔가지들을 끊임없이 잘라내듯이 우리의 의지 안에 활동하고 있는 죄 된 요소들을 끊임없이 끊어내야 합니다. 그 일을 구원받았다는 명분만 가지고 자신의 불완전한 의지로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말 무모한 일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의지를 다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는 한 치의 오점도 결함도 없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손으로 계속 잡아 주면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듯이 우리의 불완전한 의지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묵상하면서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의지를 핸들 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묵상은 단순한 명상이 아닙니다. 명상은 명상하는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명상에는 온갖 잡신들이 들어와서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묵상은 묵상하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그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초월적이면서도 우리와 교통이 가능한 인격을 가지셨습니다. 삶의 교훈을 얻기 이전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적용점을 생각하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갈망하며 묵상하는 것이 기독교 묵상의 본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갈망하며 묵상하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 그분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그분의 마음으로 가득차면 우리의 불완전한 의지적 요소들이 그분의 완전한 의지에 의해 지배를 당하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정원에 있는 나무의 보기 흉한 잔가지들을 잘라냈을 때 기분이 얼마나 상쾌합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지 안에 있던 불완전한 요소들이 떨어져 나갈 때 우리의 영혼은 상쾌해합니다. 

기독교 묵상의 핵심은 어떤 교훈을 얻어내고 적용점을 찾아내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갈망하고 묵상하며 그분의 완전한 의지가 우리의 불완전한 의지를 지배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간절히 갈망하며 묵상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때로는 우리를 미소 짓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게도 하고, 때로는 춤을 추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노래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묵상을 통하여 누리는 그분과의 친밀한 사귐의 현장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newsong6364@gmail.com

06.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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