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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조직신학(2)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4. 개혁주의는 인간의 지적 타락성 (noetic influence of sin)을 인정한다.

 

사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의 생각(사상) 속에 하나님의 진리에 반대되는 생각과 판단을 갖도록 한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며, 나아가서 그것을 먹으면, “인간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는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는 생각과 이론 체계를 갖도록한다. 

인간의 죄성이 인간의 지적영역에까지 더럽혀 그 결과 인간은 비진리를 진리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삐뚤어진 우리의 사고체계들과, 우리의 성향 혹은 경향 (tendency)을 바르게 회복시켜준다. 

고후 10:4-5,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성령께서 우리의 타락되고 잘못된 전제들, 사상들,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신다.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신학의 정의는 말씀 (Text)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의 상황속 (Context)에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시켜주시는 사역이다. 그리고 설교는 말씀과 상황을 연결 시켜주는 다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과 설교는 깊은 관계가 있다. 신학은 궁극적으로 설교로 나타나야하고, 설교는 말씀으로 상황을 해석하여, 그 말씀을  우리의 생활속에 적용시켜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권면하는 것이 곧 설교이다. 

 

III. 조직신학이란? 

 

존 프레임 (John Frame) 교수에 의하면 조직신학은 “주어진 주제에 관하여 성경 전체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조직신학이다.” 

“Systematic theology is any study that answers the question, ‘What does the whole Bible teach us today?’ about any given topic.”

실제적으로 모든 크리스쳔들은 매일 생활 속에서 조직신학을 하고 있다. 예를들면 친구들에게 전도를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말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요약해서 전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이 곧 조직신학을 하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조직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1) 주님의 지상명령을 잘 수행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내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 모든 성도의 사명이다.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복음 진리를 성경으로부터 요약해서 전해야 한다. 이 작업이 곧 조직신학이다. 

2) 잘못된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사이비 종파나 이단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설 수 있도록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3) 새로운 문제들이 생겼을 때 더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 시대에 등장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와 성전환 (Transgender) 문제, 그리고 성 (Gender) 자체를 없애는 문제”이다. 이러한 이 시대의 문제들을 성경적인 바른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알기위해서는 조직신학이 필요하다. 

4) 성도들의 신앙 성숙함에 도움이 된다. 

 

IV.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신학공부를 하면 반드시 세 가지 원리 (principium)를 공부해야한다. 1) 존재의 원리;  2) 내적 인식의 원리; 3) 외적 인식의 원리. 존재의 원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만물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학문의 첫째 원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이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수용할 능력이 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시면 그 진리를 받아 드릴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실때에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하며, 혹은 외적 인식의 원리라고 한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진리를 계시해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계시라 칭한다). 그리고 피조물 (자연), 역사,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계시해 주시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일반계시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일반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반계시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 해석되어져야 일반계시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A. 성경의 권위

 

한국장로교회에 12 신조가 있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간단하게 12개 항목으로 요약하여 한국 장로교인들에게 가르쳤고, 믿고 신앙 고백하도록 했다. 12 신조 가운데 처음 나오는 것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유일한 법칙이다.”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are the Word of God,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이 고백속에서는 1)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2) 성경은 정확 무오하다. 3)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해 유일한 법칙다. 성경에 대해 이 3 가지를 믿고 고백한다. 장로교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이 신앙고백을 해야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영감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감의 방법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일반적으로 영감의 방법에 대한 이론들은 아래와 같다.

1) 기계적 영감 (mechanical inspiration):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성경의 저자들은 받아 적는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저자들이 받아 적은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성경의 많은 부분은 역사, 시, 사실의 진술, 율법, 시, 예언, 편지, 등 다양한 장르가 있기 때문에 기계적인 영감은 맞지않다.

2) 동력적 영감 (dynamic inspiration): 인간 저자들의 영적인 직관을 하나님의 계시로 생각한다. 성경을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의 증언이라고 한다. 동력적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시의 주체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이라고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 저자들의 신앙 고백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신앙이 뛰어난 사람들이 자기들의 상황속에서서 자기들의 언어로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에 오늘 이 시대와는 맞지 아니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3) 유기적 영감 (organic inspiration): 성령께서 성경 저자들을 감동시켜 저자들 각자의 성격, 재능, 은사, 교양, 문체 등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성경을 조화있게 기록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성경저자들을  감동시켜 저자들을 죄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셨기 때문에 성경을 기록할때에 전혀 오류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개혁주의 입장은 성경의 유기적 영감설이다. 

그리고 성경의 영감의 범위에 대해서 사상 영감론 (thought inspiration)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계시의 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자가 담고 있는 사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오히려 글자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의 언어는 항상 오류가 있기 때문에 언어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전달 될 수 없다”  주장한다.

 

“조직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잘 수행하고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설 수 있고 

이 시대의 문제 앞에 성경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게 되므로 성도의 신앙 성숙에 도움을 준다”

 

또한 언어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반대하는 자들은 실존주의 신학 (신정통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명제적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만남의 사건속에서 언제나 개인적이다.”

(Revelation is never propositional, but always only personal in terms of Christ event). 이들에 의하면, 성경은 오류가 있는 인간이 하나님에 관한 증언의 기록이며, 성령께서는 성경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는 문자 혹은 글로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비언어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대 언어철학자들도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주장한다. 더우기 초월적인 실체들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한다. 언어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계시는 문자로 전달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어를 사용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가운에 하나는 언어이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하나는 언어로 소통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자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문자화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교제하시기 위해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인간이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고백하며 친교하도록 만드셨다. 

특별히 개혁주의는 사상과 언어를 분리 시킬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 할 수 있는 충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언어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에 의하면 언어 하나 하나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들이 모여 문장을 만들며, 문장이 모여 사상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의 축자 영감 (verbal inspiration)을 믿는다. 성경의 언어 하나 하나가 매우 중요하며 문자 하나 하나 모두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기록되어졌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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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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