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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이 신앙고백이 될 때

백운영 목사

(필라델피아 영생장로교회)

한국을 여행하며 강원도에 잠시 묶을 때 산행을 하기로 하고 오대산을 향하여 갔습니다. 차로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곳에 차를 대고 걸어서 올라가는데 주중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많은 사람이 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가다 보니까 ---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절 인심이 좋다는 기억이 났고 마침 시장하기도 하고 목도 마르고 해서 절 밥을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사가 절에 들어가 식사 한 끼 얻어먹고 가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아내의 말도 무시한 채 제법 사람이 많이 모인 산속의 절가에 가서 기웃거렸습니다. 그런데 공짜는커녕, 식당같이 차려진 곳에서 음식과 음료를 팔고 있었습니다. 절 밥을 얻어먹을 기대를 뒤로하고 목이나 축이려고 근처에 있다는 약수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약수터에 가니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페트병에 담아 팔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절에서 갓 쪄나온 다양한 떡들과 한과류도 한쪽에서 장사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안 내면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았으며 책에서 읽은 절 인심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쫄쫄 굶고 하산한 것이 기억납니다.

마침 방문하던 때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절에는 화등이 환하게 이곳저곳에 달려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화등에 달린 각종 소원을 읽어보는데 스님 한 분이 다가와 하나 구입하려냐고 묻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천차만별입니다. 십만 원대부터 백만 원, 천만 원, 억 짜리도 있다고 합니다. 백만 원 이상이면 주지 스님이 특별 기원을 빌어 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사이비 목사들이 성도들의 돈 봉투를 받고 기도해 주는 모습에 기겁하고 있는데 이곳도 엇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가면 근본 죄 성은 다 똑같아집니다.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흥정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기성은 종교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헌금의 종류도 많아지고 액수가 큰 헌금을 낸 사람들이 알려지고 다른 사람의 관심과 부러움을 사게 되면 그 교회는 하나님보다는 세상 모습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전에 유럽 교회에 드러난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일 헌금 안에 반대 급수를 기대하는 마음과 이만큼 드렸기에 더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금이 아닙니다. 헌금은 철저하게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다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헌금조차도 우리의 예배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금한 액수에 따라 그 많기의 분량대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우리가 판단할 수도 우리의 지적 분량으로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고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셨고 그것을 쓰는 것조차 관심을 가지신 하나님께 앞으로 우리 헌금조차 평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주권을 올려 드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gypack@hotmail.com

07.0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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