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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이 되신 예수님”

백운영 목사

(필라델피아 영생장로교회)

한국에 미국 선교사님이 도착하여 충청도에 사역지가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한국말이 많이 서투십니다. 마침 이발소에 가야 했기에 한 이발소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이발사가 “왔시유~” 라고 인사를 합니다. 아니, 이런 시골 지역 이발사가 영어를 하네? 라고 조금 놀랬습니다.  영어로 “What see you?” 라고 들은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울이 보입니다. 그래서 “mirror” 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발사가 웃으면서 이발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머리를 뒤에서부터 앞까지 다 밀어 버렸답니다. 물론 우스개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두 분이 대화는 했지만 전혀 소통은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서로 간에 대화는 하지만 소통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담이 막힌 인간들에게 ‘사랑한단다’ 소통하셨지만 죄인들은 마음에 담지 않았습니다.  성민으로 선택하시고 직접 삶의 목적을 주셨지만 항상 배반하고 내 중심적으로 살아갔던 죄인들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입니다. 아무리해도 대화가 안 되니 소통을 위해서 친히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동남아나 인도네시아는 일년에 두 개의 계절만 있습니다. 우기와 건기는 일년에 각기 특색 있고 변화를 주는 계절입니다. 건기 때는 말 그대로 비가오지 않아서 말라있는 시절이고 항상 물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우기가 시작되면 그 이후 반년동안 매일 비가 옵니다. 물론,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두 차례 강한 폭우가 쏟아지기에 우기가 오기 전에 지붕을 손보는 것은 매년 연례행사와 같이 아주 중요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한번은 제가 책임을 맡고 있던 신학교 산하 선교훈련원의 지붕을 손보던 훈련생이 저에게 달려와 지붕 처마 밑에 새둥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붕에 이물질을 치우고 새로 페인트를 칠해야 하려면 둥지를 치워야하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미 새가 근처에 있는 가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삐약하고 울어대는 새끼들을 구슬리며 새둥지를 떼어서 건물 뒤쪽 나무의 나뭇가지 사이에 옮겨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어미 새가 둥지가 있던 곳에 와서 화난 듯이 날개 짓을 하면서 서글프게 울어댑니다. 그때 저는 그 새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리와 봐, 내가 네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께” 아무리 손짓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혹시나 해서 인도네시아 말로 해봅니다. “Ayo, ikuti saya, akan menunjukan kemana bayikunnya” 그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영어로도 말해봅니다.  “Hey, come follow me, I will show you where your babies are” 여전히 소통이 안됩니다. 그때 제가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잠시 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그냥 하늘에서만 하지 않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소통이 막힌 죄인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심으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바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탄생을 “성육신”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우리의 이웃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아니면 잠시 시간 내어서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행동이 뒤따라야 하고 내 중심적이 아닌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 성육신적인 사랑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교사로 있을 때 교회들이 자기 교회를 홍보하기 위해서 선교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그 지역에 가지고 들어가서 현지 주민들과 상관없이 펼쳐내고 자기만족에 도취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로 사역을 진행하지만 현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 될 때는 저는 서슴없이 그런 팀들을 거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지 상황을 모르면서 자신들 교회의 특성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와서 선교지에서 진행하려는 시도는 자기만족밖에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와 같이 되시면서 철저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심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gypack@hotmail.com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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