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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건 아니다


우리 집 주소는 Woodland Drive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 울창한 숲속에 길이 닦이고 주택들이 지어져 여전히 나무도 크고 숲도 깊은 동네다. 그래서 워싱턴DC가 차로 20분 밖 에 걸리지 않는 도시지만 동네를 산책하기도 좋고 여름마다 넓은 뒷마당에 와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사슴무리와 어미 곁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아기사슴들을 보며 자연이 주는 기쁨과 생명에 감사하며 지낸다. 예민한 사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최대한 살금살금 걷는 아들의 우스꽝스런 걸음걸이에 웃음 지며 사슴가족을 보는 것은 우리 가족의 가장 즐거운 여름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미주지역 전체에 부는 주택 과열현상과 집값 상승은 이곳 노던 버지니아의 집값도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오르게 하고, 더불어 수요와 공급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부동산주택업자들은 비어있던 땅에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사택 옆 숲이 연결된 넓은 빈 땅도 어느 날 작은 깃발들이 꽂히고 공사 차량들이 오더니 땅을 다지고 새 주택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주택건축을 위해 다양한 차량들과 사람들이 들고나며 분주해지자 자연스럽게 사슴과 여우들은 자기들의 막힌 길을 두고 숲 앞 경계에서 헤매는 모습이 보인다. 차량소통이 늘자 로드킬 당하는 동물의 사체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보여, 공사를 지켜보는 마음이 새 이웃을 만나는 기대보다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당연히 동물들은 그 수도 점점 줄어드는 듯 하더니 어느새 모두 자취를 감추고 여름이 시작돼도 뒷마당에 매년 보이던 사슴가족도 집 사이 샛길을 통해 숲으로 뛰어가던 여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인식하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사슴들이 오지 않는다며 서운해 한다. 정원 예쁜 화초들의 새순을 따먹기는 했어도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는 반가운 손님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렇게 새로운 이웃들이 이사와 인사를 나누고, 여름햇살은 점점 뜨거워져 간다.

팬데믹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텃밭을 가꾸는 것이다. 이미 텃밭자리가 되어있는 땅이 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아이들과 마켓에서 고추와 깻잎 상추모종을 사다가 옮겨 심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심은 야채가 잘 자라도록 잡초도 열심히 뽑아주는 정성을 들였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어르신들 말씀처럼 시간을 쏟은 만큼 텃밭 채소들은 제법 자라서 밥상에 올라 여름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특히 열매를 맺어 영글기를 기다려야 하는 고추에 비해 깻잎과 상추는 자라는 속도가 빨라 이웃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이 먼저 밭에 물을 준다고 뒷마당으로 가더니, “뭐야! 왜 이래!”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왜? 무슨 일이야?” 대답하며 쫓아가보니 텃밭 상추 잎이 똑똑 다 따져 끝부분만 남아있다. 향이 강한 깻잎과 고추는 군데군데 끝만 살짝 건드린 듯 보이는데, 상추는 단 한 잎도 없이 모두 먹어치웠다. 뜯어먹고 남은 흔적을 보니 예전 사슴들이 먹은 화초 잎 같다. 앞마당으로 달려가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무성했던 화초 잎도 다 사라졌다. 

생각지 못한 텃밭 공격에 실망한 아이들에게 “얘들아, 걱정하지마.... 사슴이 먹은 거야. 사슴들이 돌아왔나봐!” 웃으며 얘기한다. 아이들도 이내 수긍하며 “정말이요? 사슴이 먹으면 괜찮아요” 하고 좋아한다. 이날 이후 상추는 사슴들에게 도네이션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찾아온 사슴들은 이제 매일 다녀가는지 상추 새순이 조금만 올라와도 없어진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동 트기 전 어스름에 다녀가는 사슴무리와 아기사슴도 보았다고 얘기해 주며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한다. ‘다행이다!’ 안 보여서 걱정하고 아쉬워하며 이젠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변이바이러스로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세상이 육체적질병과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존중, 우정, 용서, 사랑, 공의도 점점 사라지게 한다는 걱정스런 뉴스가 많다. 그러나 이젠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공사가 끝나고 맛있는 풀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고 기다리니 사슴가족이 조용히 돌아와 다시 뛰어논다. 

이번 칼럼을 다듬고 있는데 아기여우 두 마리가 뒷마당에 있다고 해서 가보니 두 마리가 아니고 세 마리가 놀고 있다. 귀여운 아기여우들이 금새 가버릴까 아들의 걸음이 또 웃음 짓게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5:8).

songjoungim@gmail.com

07.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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